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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0. 2020

화교 (華僑)

강경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

어릴 때만 하더라도 화교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는데 요즘에는 중국인이나 조선족등으로 보통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중국인들이 모여 살며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화교의 조직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조금 다르다. 중국인들만의 끈끈한 결속력 같은 것이 있으며 경제력도 상당해서 지역사회에 입김이 센 편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나서 대한민국 정부 과도기에 중국인들이 이 땅에도 많이 들어와 살았다. 

강경에는 중국인들을 위한 학교가 따로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외국인학교와는 다른 형태지만 외국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에는 그들만의 학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강경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은 등록문화재 제33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논산시 강경읍 황산 1길 6에 자리하고 있다. 강경분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다른 지역분들은 처음이라면 찾는 것이 약간 어렵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중국 등을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오래된 건물이 앞에 보인다.  접근성은 좋지 않아서 낮은 담을 넘어서 들어가 본다. 화교란 중국과 타이완의 국적을 가진 자로 해외에 정착하여 거주하는 중국인이나 그 후손을 의미한다.

1925년에 신축된 강경지역 근대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 건물이며 근대건축물이다.  교사는 전면에 복도를 둔 목조 건물로 흰색 출입구가 아치형을 이루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교사 사택의 앞에는 밭으로 활용이 되고 있었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강경의 근대문화 건축물에서 중요성이 있다고 한다. 

학교로 사용되었던 저 건물의 교실에는  삼민주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공화제를 창시하고, 국민 정부 시대에는 중국의 국부(國父)로 일컬어졌던 사람으로 타이완에서도 그는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원한 공으로 196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던 손문도 걸려 있다. 

강경 화교학교에는 아치형의 출입구에 새겨 놓은 예의염치라는 문구가 있다. 요즘 들어 예의염치라는 문구가 자꾸 연상이 되는 것은 왜일까.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가 나라를 다스리는 덕목이라 하여 화교학교라면 그 문구를 꼭 볼 수 있다. 

교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것을 볼 수 있다. 책상과 의자가 일체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그 시대 치고는 상당히 앞선 느낌이다. 대학교 때나 보았던 일체형 책상과 의자가 학생들의 키에 맞춰 제작되었다. 

공자라고 하면 유학의 대가이며 삼강오륜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배움은 사회에 진출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한 데서 유래되어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기본적인 사회 윤리가 자리 잡은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부터다. 글을 모르던 백성들은 세종대에도 패륜사건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그려 백성들을 교화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자 드디어 백성을 교육시킨다는 의미의 훈민의 이름이 붙여진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이곳을 찾아가려는 사람은 강경황산초등학교를 찾아서 가면 찾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에 따르면 효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父子有親)라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사람들의 교육 열기 또한 대단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낯선 이국의 땅에 와서 살았던 사람들의 화교학교가 강경에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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