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메길

구름재 운현궁을 본뜬 유상묵가옥

가야사를 불태우면서까지 명당에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썼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야심가였다.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지만 이하응은 이창응, 이정응, 이최응의 형제가 있었다. 그는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고 지금도 남아 있는 구름재의 이름을 딴 운현궁으로 거쳐를 옮기고 난 후인 1852년(철종 3년) 드디어 운현 집에서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태어났다. 명복이 바로 고종이다. 풍수지리의 동기 감응론에 따르면 묘의 좋고 나쁜 기운이 후손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기의 전달은 어릴수록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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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거쳐하였으며 고종이 자랐던 운현궁에는 정문과 후문 그리고 창덕궁과 운현궁 사이에 ‘경근문(敬覲門)’과 ‘공근문(恭覲門)’이 있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궁이자 왕의 잠저였지만 아들이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지어졌기에 그 규모는 궁궐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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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유상묵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바로 운현궁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서산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를 합친 어여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경로에 유상묵가옥도 걸어볼 수 있다. 명당이라는 이곳에 유상묵은 서울의 운현궁을 본떠서 건축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운현궁보다는 작지만 배치나 구조가 유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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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손이 살고 있는 곳으로 전통적인 양반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가 되어 있는데 두 공간은 행랑채와 담장으로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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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후손의 이름이 걸려 있다. 유상묵의 본관은 서령으로 서령은 충청남도 서산의 옛 지명 이기도 하다. 1310년 서령부였던때 본관이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서산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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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지역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서령유씨는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기에 해미읍성축제등에 적극적으로 참석을 한다고 한다. 서산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올해와 내년 해미읍성 축제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할 예정이다. 해미읍성은 태종대왕의 명으로 축조한 후 충청병마절도사 영을 두고 호남의 세곡과 물산을 운반하는 조운선보호와 왜구소탕의 본거지로써 호국전략 거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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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묵가옥은 대지 전면 담장과 사잇담은 막돌 담장으로 되어있고, 후면 담장은 토담 위에 서까래를 걸러 한식기와를 얹어놓았는데 출입문도 구별되어 각각 안대문과 사랑대문으로 출입할 수 있으며, ㄴ자형의 행랑채 익랑에 있는 중문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통하게 만들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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