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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1. 2020

방황은 사치다.

이번 이태원 사태를 보면서 

젊었을 때 노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다. 어차피 자기 인생을 꼬던 나이 들어서 힘들게 살든 간에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미칠 수 있을 때는 자중해야 한다. 개개인의 자유를 논하기 전제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할 시간이 있을 때가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확실하게 시간이 내편일 때가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서 그 시기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보통은 20대가 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 혹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확실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가장 이쁠 때이기도 하고 멋지게 보일 때이기도 하다. 그 시기에 마음대로 놀고 싶고 시간을 버려가며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젊을 때의 방황은 부모가 상당한 부자일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치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든든한 뒷배가 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데 하는 방황은 가장 미련한 행동이다.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꼬기 위해하는 자학적인 행동에 가깝다. 대학 다닐 때 유일하게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했던 때는 1학년 때였다.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나름(?) 아주 열심히 놀았기에 대학의 낭만(?)을 아주 잠깐 즐기고 이듬해에 군대를 갔다. 


학과 생활도 나름 열심히 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으며 저녁에 술도 많이 마셨다. 당시에는 지금의 클럽이 아닌 나이트가 활성화가 되어 있을 때였다. 지금처럼 성인 나이트가 아니라 20대 대학생들의 성지 같은 것이었지만 많이 가지도 않았다. 동아리 활동으로 댄스와 검도를 했었는데 춤을 상당히 잘 춰서 꼬임(?)이 있었지만 굳이 몰려다니지 않았다. 주말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냈고 새벽같이 운동하고 가끔 다른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를 나이트에서 할 때 무대에서 춤을 춰주기도 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그나마 했던 동아리 활동을 모두 하지 않고 학과에서 1년의 정기행사 2~3번 참석하는 것외에 시간은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데 사용했다. 유일하게 관심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공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간이 그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30대 혹은 40대에 새로운 시도를 위해 공부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시간이 목에 차오르며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를 만든다. 


젊을 때의 방황 따윈 그냥 사치다.  방황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빈 공간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 미래에 불확실한 낙관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본인이 지면 될 뿐이다. 


인생의 물길은 상당 부분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돌릴 수는 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성적 취향이 어떠하던지 매일매일을 클럽에서 살든지 간에 관심이 없다. 대신 때를 가리면서 행동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아프니까 청춘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춘의 시간은 자신의 편이다. 연애(?)도 놓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집에서 필자는 공부하고 도면을 그리고 계산을 하고 있었고 그냥 그 옆에 있었던 그 시절의 이성에게 감사를 드린다. 물론 그 친구가 학과 공부를 할 때 혹은 리포트를 쓸 때 필자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되돌아보니 시간이 확실하게 내편이었을 때 허투루 보내지 않았기에 쌓인 것이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꼬는 것은 상관없지만 관계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꼬는 것은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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