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스랑 충신

진천 안동 김 씨 사충문

조선대의 숙종은 그의 치적보다 장희빈과의 사랑이야기로 기억되는 임금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장희빈은 자신의 아들 경종이 중요한 부위를 꽉 쥐어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야사도 있는데 실제 경종은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장희빈은 남인의 세력을 뒷받침해주었기에 경종은 소론이나 남인들에게 권력의 기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세상은 4년 만에 끝이 난다. 경종이 세자 때부터 질환이 심했으므로, 숙종은 세자의 왕위 계승을 우려해 이이명(李頤命)에게 연잉군(延礽君 : 뒤의 英祖)에게 부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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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즉위하자 노론의 지위가 회복되며 소론과 남인들의 기반을 약화되었다. 이에 청주사람 이인좌는 사람을 모아 영조는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워, 영조를 폐하고 밀풍군 탄(密豊君坦 : 昭顯世子의 曾孫)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인좌의 난이다. 청주성을 함락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청주와 진천을 함락하면서 이곳 진천에는 이지경이 스스로를 현감의 자리에 올라 백성을 괴롭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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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기간 반군의 영역에 있었던 진천의 이지경을 공격하기 위해 김천주와 그의 동생 천장, 아들 성추, 조카 성옥 등 4명이 쇠스랑, 괭이 등으로 진철을 탈환하기 위해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국왕은 정문을 내렸는데 이것이 안동 김 씨 사충문이다. 안동 김 씨 사충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인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사방을 홍살로 막고 그 주위에 회와 돌을 섞은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은 형태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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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고종 23)에 정문원(鄭文源)이 쓴 현판에는 충신가선대부김천추지려 금상기유오월일명정 충신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김천장지려 기유오월일명정(忠臣嘉善大夫金天柱之閭今上己酉五月日命旌忠臣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金天章之閭己酉五月日命旌)’, 아래쪽에는 ‘충신장사랑김성추지려 금상을유오월일명정 충신장사랑김성옥지려 금상을유오월일명정(忠臣壯仕郞金聲秋之閭今上乙酉五月日命旌忠臣壯仕郞金聲玉之閭今上乙酉五月日命旌)’이라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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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쇠스랑이 자주 등장한다. 보통 한국의 쇠스랑은 발이 3개인 데 반해 중국 것은 4~6개, 일본 것은 2개이다. 농업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쇠스랑을 사용해본 기억은 있다. 밭을 파고 흙덩이를 쳐서 골을 내고 반반하게 고르기도 하는데 농기구이자 농민들이 저항의 수단으로도 많이 사용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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