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이 없고 인심좋은 선산의 관문
경북의 주요도시중 구미가 있는데 구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선산읍이란는 곳이 있다. 선산은 고려시대에 선주부, 조선시대에 선산군이라고 지역명이 붙을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곳 선산은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서 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선산읍의 지역명중에 독특한 것도 있다. 문동골에서는 글 잘하는 선비가 많았다고 하며 왕건 태조가 견훤의 군사와 대적할 때 군사 대열이 이어졌다는 태조미(太祖尾)라는 지역명도 있다.
선산은 뭐니뭐니 해도 읍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자리하고 있는 이 낙남루가 아닐까. 현재 단계천 변에는 고려 말 선산군수를 지낸 이득진이 세웠다는 낙남루(洛南樓)가 복원되어 있는데 마치 선산의 옛 영화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예부터 선산은 조선 유학의 연원 또는 연수(淵藪)로 일컬어져 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특히 선산에는 유형문화재 제236호인 하위지 유허비는 영남 선비문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육신중 한 명이기도 한 하위지는 품성이 강직해 대사간의 직분으로 권세에 굴하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세조에 의해 그가 처형되자 선산에 있던 두 아들 하호(河琥)와 하박(河珀)도 연좌(連坐)되어 사형을 받았다.
낙남루 옆으로 오면 오래되어 보이는 석탑과 함께 선산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선산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이야기가 한자로 쓰여져 있다. 한교리(韓敎履)라는 의병장이 효수(梟首)되었던 것을 기리며 갑오전쟁선상창의비(甲午戰爭善山倡義碑)와 선산 선산을미의병효수지비(善山乙未義兵梟首址碑)가 눈에 뜨인다.
저 앞에 보이는 낙남루 앞을 지나 선산읍으로 들어오면 동쪽으로 동부리·교리·화조리가, 서쪽으로 완전리·노상리·이문리가 지리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선산에는 5일장으로 열리는 전통시장인 봉황시장이 있다. 예전에 5일장이 열릴때 두세번 와본 기억이 난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즘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처럼 생활방역속에 열리고 있다고 한다.
낙남루의 건너편에는 구미시립 선산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된 구미선산도서관은 부지 면적 4,576㎡에 전체 건축 면적 2,942.27㎡로 코로나 19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에 따라 5월11일(월) 부터 자료실(종합, 어린이)만 부분 개관하였는데 운영기간은 2020.5.11.(월) ∼ 상황 종료 시 까지이며 평일 9:00~18:00 / 주말 09:00~ 17:00까지 이용할 수 잇으며 대출과 반납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