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의 마을 풍광
보리를 한자로는 대맥(大麥), 밀은 소맥(小麥)이라고 부른다. 둘 다 벼과에 속하며 우리가 먹는 식량원으로 없어서는 안될 식물이기도 하다. 우연하게 찾은 거제의 문학인 청마 유치환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익어가는 밀이 색다른 풍광을 만들고 있었다. 이날 만난 것은 밀이었지만 연상된 것은 호밀이었다. 청마 유치환이 문학인이기 때문일까. 밀은 예전부터 우리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곡식이다. 밀은 벼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호밀은 좀 거칠어 보이는 느낌으로 기후와 토양이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적합한 곳에서 잘 자란다.
청마의 길에 들어서면 보호수이며 거목이 사방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먼저 만나게 된다. 요즘에 이름앞에 붙은 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호는 사람이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유치환의 호는 파랑색의 말을 의미하는 청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민족적인 자각과 자주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기운에서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호를 짓는 경향이 있었는데 청마는 유치환과 잘 어울려 보인다.
청마 유치환의 생가의 안쪽에 들어오면 대청마루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유치환은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고 한다.
유치환이 생각했던 퇴폐적인 분위기는 절제되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우연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에서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지저분하고 퇴폐적으로 보이는 세상에 절망하면서 방황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자신 역시 허세와 치기어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진실한 것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에 대한 강한 바람을 추구했다.
초가지붕과 마당에 깔린 잔디가 아주 곱게 잘 정돈되어 있다. 찾아갔던 날도 관리를 하시는 분이 꾸준하게 이곳 저곳을 손질한 덕분에 깔끔하게 관리된 거제의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옆에는 청마 유치환의 전시관이 있다. 그는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일관하여 생활과 자연, 애련과 의지 등을 노래하였는데 콜필드가 추구했던 삶이 아니었을까.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그가 만나는 인물은 유명인만 쫓아다니는 사무직 여성이나 믿음이 가지 않는 교사, 마약 밀매업자,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는 여자 친구등은 그를 고독감과 염세관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의 시의 옆에 동상으로 만들어진 청마 유치환은 세상에 대한 허무를 바위로 표현하였고 고고함은 나무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청마 유치환은 자신의 부친이 살던 거제도 둔덕골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가 갈면서 살았던 정겨운 곳으로 표현하였다.
마을의 입구에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광장의 한 켠에는 유치환의 호인 청마가 표현되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청마 유치환 생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가 썼던 시가 있어서 읽으면서 돌아볼 수 있다.
봄에 만나보는 밀밭이 만들어내는 풍광도 좋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다.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난 세상의 허위와 위선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청마 유치환에게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 옥천을 대표하는 시인 정지용(鄭芝溶)이 있다. 시단을 풍미했던 정지용으로 인해 형 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중퇴를 하고 나서다. 옥천의 정지용과 거제의 유치환의 시풍은 다르지만 암울한 시대에 고향과 자연을 그렸던 것은 비슷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