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자립

대전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맹자는 부모의 뜻을 무조건 따른다고 효자가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즉 자립한 주체가 있고 난 다음 어버이를 올바로 섬길 수 있으며, 또 그 힘으로 군주도 바로 섬길 수 있다는 의미로 주체의 자립 없이 어버이를 섬기고, 군주를 섬기는 것은 노예의 길이라는 것이다. 유교는 노예의 철학이 아니며 조기란 사람이 불효의 세 가지 조건의 첫째로 '부모의 생각에 아첨하고 맹종하다가 부모를 불의에 빠뜨리는 짓'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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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는데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기획재정부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호조(戶曹)가 그런 역할을 맡았으며 호구·공부·전곡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장관 격인 판서는 정 2품 직이었다. 호조판서는 그 아래에 참판(종 2품 1명)과 참의(정 3품 1명)를 두고 정무를 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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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가 있는 집들은 대대로 양반가인 경우가 많으며 자식을 키울 때 다른 형제에게 보내어 배움을 받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식이 자립할 수 있는 주체로 크게 해주는 부모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정교육은 그 무엇보다도 자식이 제 몸을 지키는 일을 알게 해주는 첫걸음이다. 부모 섬김에 앞서, 자기 성찰과 자기 정립이 우선이라는 뜻으로 주체를 잘 보전해야 가정을 제대로 건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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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럽게 열린 안동권씨유회당 종가는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과 내를 벗하며 앞에는 자연공간과 어울리는 정원을 조성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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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양반가의 종가와 달리 건물의 규모가 작은 반면 건물 간의 사이 공간을 여유롭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낮은 잡석 기단 위에 구성한 ㄱ자형 안채와 아담한 크기의 사당과 건물들이 여유를 느끼게 해 준다. 공자는 아들 백어를 손수 가르치지 않고 사사로이 끼고돌지 않고, 외려 남의 자식보다 뒷줄에 세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잘하라고 꾸짖는 것이 외려 자식 마음을 상하게 하고, 또 그 반발로 자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다치게 해 서로 해치게 할 수도 있으니 서로의 자식을 바꿔 가르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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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도 능했으며 강직했던 권이진의 아버지는 현감 권유(權惟), 어머니는 산림(山林) 송시열(宋時烈)의 딸이며 논산 명재고택의 윤증에게 배웠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우윤(右尹) 권시(權諰)인데 권시는 대전 남선공원 옆에 자리한 도산서원에 배향되어 있으며 옆에는 권시의 묘가 있다. 권시, 권유, 권이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만 보아도 집안의 교육철학을 알 수가 있다. 자식이 주체로 올바르게 자립한 다음에야 모든 배움은 의미가 있으며 옳게 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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