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시작

천고, 신채호와 의열단

올해 상반기는 모든 문화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 연극, 예술, 음악 등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개점휴업하다시피 했다. 일이 없으니 수입도 없었다. 최근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 등으로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온기가 닿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서울 및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 등에서는 6월에 조심스럽게 문화공연 등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MG0A7922_resize.JPG

대전하면 단재 신채호 선생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생가도 찾아가 볼 수 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글을 남겼던 사람이다. 대덕문화원의 문예회관에서는 신채호와 의열단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4일부터 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평일에는 저녁 7시 30분, 토요일에는 오후 4시에 공연을 하는데 세 번만 공연한다.

MG0A7926_resize.JPG

대덕문화원은 대덕구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5월까지는 거의 이용하지 못하다가 6월부터 단계적 이용을 고려를 하고 있다.

MG0A7930_resize.JPG

2층으로 올라오면 대전에서 거주하던 분들의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마치 작은 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은진 송 씨와 관련된 문서와 물품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MG0A7933_resize.JPG

회덕에 살던 송담 송남수 선생의 문집인 송담집, 지금 중리동에 거주하였던 송애 김경여 선생의 문집인 송애선생문집도 있는데 김경여는 병자호란시에 인조의 명으로 남한산성 전투에서 독전어사를 역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MG0A7936_resize.JPG

특히 한 문서도 눈에 뜨인다. 동춘당 송준길이 둘째 손자 병하를 해주 목사의 질녀와 혼인시킬 때 보낸 혼서지도 보존이 되어 있다. 손자의 혼인에도 할아버지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MG0A7940_resize.JPG

옛날에 주고받던 편지들도 묶어서 보관하고 있다. 선세언독은 은진송씨 선조들의 한글편지를 모아 장첩한 것이라고 한다. 동춘당 송준길의 한글 간찰도 같이 장첩했다.

MG0A7943_resize.JPG

6월 4일 공연에 앞서 배우들은 리허설을 하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신채호는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하였는데 지금 그 생가지가 복원되어 있다. 대전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는 신채호가 태어나서 8살까지 살던 곳이다.

MG0A7944_resize.JPG

연극에서는 공연성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보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theaoma'의 어원에서 나온것이도 하다. 연극은 영화와는 달리 순간 예술이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무대조명이나 춤, 음악 등 배우의 연기가 같이 통제되면서 때론 즉흥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MG0A7946_resize.JPG

의열단은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했는데 이병헌이 김원봉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1935년 다수의 민족주의 단체와 함께 조석 민족혁명당이 출범할 때까지 1919년 항일 독립운동단체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의열단은 '하늘 아래 정의로운 일을 맹렬하게 실행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MG0A7950_resize.JPG
MG0A7951_resize.JPG

암살 대상을 조선총독부 고관·군부 수뇌·대만 총독·매국노·친일파 거두·밀정 및 반민족적 토호열신 등 '의열단7가살'로 지정하여 대상으로 삼았다. 지식인이었던 신채호와 행동단체였던 의열단의 만남이 연극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MG0A7962_resize.JPG

회덕에는 은진 송 씨나 안동권 씨 등이 거주하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교지(敎旨)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곳에는 그 교지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4품 이상 문·무관의 고신, 홍패·백패의 수여, 추증, 노비와 토지의 사패, 향리 면역의 사패 등의 경우에 교지를 내렸다. 대덕문화원에서는 공간의 방역과 더불어 개개인의 방역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문화생활이 열리고 있는데 대덕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땅의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