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문화

대전 응봉산과 은진송씨 묘역

시대가 바뀌어서 매장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땅에 묻고 위에 봉분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된 우리의 매장문화에서 비롯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6 feet under라고 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삶의 이야기로 그려진 바 있다. 회덕의 지역은 은진송씨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에 그 흔적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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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름은 장마기간도 짧고 다른 해보다 여름이 일찍 시작되어 9월까지 이어져서 상당히 더운 여름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대덕구의 우측을 이어가는 계족산이 있지만 그 부근에는 높지 않은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덥지만 하루의 햇볕 양을 채워보기 위해 송촌 생활체육공원으로 발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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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활체육을 해보면서 몸을 풀어본다. 이날은 응봉산을 돌아보고 은진송씨 후손들의 묘역을 들러볼 생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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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송씨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 등이 대표적인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쌍청당, 제월당 및 옥오재, 옥류각, 호연재 고택, 동춘당 등은 모두 은진송씨와 연관이 있다. 선비마을 3단지 아파트의 뒷길로 오면 굴다리를 지나면 응봉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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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에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텃밭이기에 자체적으로 도시텃밭 연구회도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6월 5일 망종이 지나가서 전국의 대부분의 논에는 모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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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뜨거운 여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만 생각하면 될 듯하다. 가장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오의 태양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로 북극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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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쉽게 지나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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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넘는 온도 덕분에 조금만 걸어서 올라가도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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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에는 은진 송 씨 후손들의 묘가 많이 남아 있다. 대전시 측에 따르면 은진 송 씨 묘역은 조선시대 이후 500여 년에 걸쳐 181만 5000㎡에 달하는 묘역에 1000여 기 이상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묘역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며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석물이나 시설물이 있기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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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자락에는 1000여 기가 넘는 묘 가운데 일부만이 있지만 대전시 문화재로 지정돼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존이 잘된 왕실 묘에 비해 민묘(民墓)의 경우 은진 송 씨 묘역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곳이 흔치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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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이 되어있지 않은 은진송씨의 묘도 보인다. 은진송공봉묘지묘라고 쓰여 있는데 1937년에 태어나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생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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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 송준길로 잘 알려져 있는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 송대원(宋大源)이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회덕에 자리를 먼저 자리를 잡고 살았던 성씨는 회덕황씨다.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낙향하여 처가인 회덕 황씨촌에 송명의가 자리잡으면서 은진송씨가 회덕에서 이어졌다.송명의(宋明誼)의 아들 송극기(宋克己)가 류준(柳濬)의 딸 고흥 류씨(高興柳氏)와 결혼하여 아들 송유(宋愉, 1388년 ~ 1446년)를 두었다. 송유는 12세에 부사정(副司正-조선시대 오위(五衛)의 종7품 관직)이 되었는데, 13세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 회덕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였다. 송유는 어린 나이에도 조용히 살면서 평생을 영화로운 벼슬길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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