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화개장터의 옛 모습
하동읍이 아닌 거리가 떨어진 화개면에서 열리는 화개장은 본래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열리던 장으로,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 즉 행상선(行商船) 돛단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는 않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많은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제하(題下)에서 당시의 시장 다섯 곳을 소개하면서, 화개장은 1770년대에 1일·6일 형식의 오일장이 섰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조선 시대 하동 지역의 시장 분포 (1770-1830)
하동에서 유명한 재첩을 넣은 비빔밥도 하동 화개장터의 맛이기도 하다. 재첩국을 먹는 선택도 할 수 있지만 재첩 비빔밥을 먹으면 기본적으로 재첩국이 나오기 때문에 재첩 비빔밥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자잘하지만 섬진강의 맛을 품은 재첩과 각종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과 함께 비벼먹으면 된다. 가끔씩 먹으면 또 다른 비빔밥의 느낌을 전달해준다. 자 먹었으니 화개장터로 나아가 본다. 화개장터에는 ‘화개장터’라고 쓰인 표지석과 화개장터의 유래 및 화개장터의 노래 가사를 적은 석조물, 역마상과 옛 보부상의 조형물이 반겨준다.
이순신 백의종군로의 여정에 있기 때문에 이정표를 볼 수 있다. 화개에서 이순신이 걸어갔던 합천까지는 150km 정도가 남아 있다. 한 달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이 걸으면 175km쯤 걸으니 마음먹으면 백의종군로를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전에 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화개장터에는 하동 옛 사진 갤러리가 화개장터 옆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옛날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옛날에 그려졌던 장날 풍경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렇게나마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화개장은 1770년대에 1일·6일 형식의 오일장이 섰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륙에서 생산된 임산물 및 농산물과 남해에서 생산된 해산물들을 서로 교환하며 조선 시대 때부터 중요한 시장 중의 하나로 주로 지리산 일대의 산간 마을들을 이어주는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지금과 같은 세금제도는 천한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장날에 시장에서 하는 일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것을 바꾸는 것이었고, 관리하는 사람은 다만 그것을 살필 뿐이었다.
욕심을 가진 천한 사람이 나타나 우뚝 높은 언덕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보고는 장날 열린 시장의 이익을 모두 다 가져가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때부터 세금을 거두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난중일기 상의 경남지역의 백의종군로는 총 161.5km에 달하며 하동에서 산청, 합천, 사천, 진주 등을 이어간다. 유숙 기간은 총 11일이었다고 한다.
하동의 화개장터에도 코로나 19로 인해 방문객 무균 소독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무균 소독실은 경상북도 문경에서도 본 적이 있다.
김동리가 하동 화개장터를 그린 소설 역마에서 그려진 화개장터의 모습은 과거로 지나갔지만 하동·구례·쌍계사로 갈리는 세 갈래 길목의 화개장터에 자리 잡은 옥화네 주막에 어느 여름 석양 무렵 늙은 체장수와 열대여섯 살 먹은 그의 딸 계연이 찾아오면서 시작된 이야기가 단편소설에 담긴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