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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7. 2020

국정농단 (國政壟斷)

이자겸의 난 때 피살된 송인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특정 집단이나 사람의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하는 것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조직에서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온갖 불법이 난무하더라도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힘든 이유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속에 있다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역사 속에서 그런 사람들은 수없이 등장하였다. 고려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국정농단을 했던 사람으로 이자겸이 있다. 

진천과 음성이 중심이 되는 충북혁신도시에는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송인 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송인이라는 사람을 모신 사당과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송인은 이자겸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에게 피살당하였고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에 추증되었다. 

송인 공원에는 상산재라는 재실이 있다. 진천 송 씨의 중시조인 송인 장군의 묘는 여느 무덤과 달리 직사각형의 봉분에 긴 돌을 깎아 두른 것이 독특하며 1994년에 충청북도 문화재 지방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상산재는 1992년에 후손들의 성금을 모아 선조를 기리고 제향을 위한 설비로 건축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의 경아문은 시경에서 따온 것이다. 높이 공경하고 큰 덕을 따르라는 뜻이다.  

상산재 옆에는 충절수가 심어져 있다. 진천 송 씨 시조인 송인의 9대손인 송석 동은 단종의 복위 운동 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세상을 떠날 때 3 부자가 순절하였는데 이들의 희생을 충절수가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고결한 유풍이 흐르는 공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전에도 권력을 잡고 국정농단을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최고 권력자와 연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둘째 딸(순덕 왕후)을 예종에게 시집보내면서 다시금 출세가도를 달렸던 이자겸은 높은 벼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국정농단까지는 하지 못했다. 예종이 재위 17년 만에 죽자 예종의 아들인 태자 해를 즉위시키면서 절대 권력을 쥐게 된다. 

방자해질 대로 방자해진 이자겸의 전횡은 끝이 없었는데 결국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고 척준경이 인종을 호위하던 진천군의 무신 송인을 피살한 것이었다. 송인(宋仁)[?~1126]은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두루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아들로 송원겸(宋元謙), 손자로 송순(宋恂)·송희(宋憘)·송국첨(宋國瞻)을 두었다.

진천 송 씨는 진천에서 상산임씨(常山林氏) 다음으로 오래된 성씨로 고려 때 활동했던 진천 출신 인물로 송언기(宋彦琦)와 송국첨(宋國瞻)이 등장한다. 송인 공원은 송인의 묘소를 중심으로 운동하기 좋은 공간이 조성이 되어 있다. 충북혁신도시의 뉴타운이 조성이 되어 있는 곳 중심으로 올해 코로나 19가 터졌을 때 자가 격리되었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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