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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1. 2020

핏줄 이야기

평산 신 씨의 흔적 곤산 서원

칠곡에 집성촌이 있는 평산 신 씨의 시작은 고려 초기로 올라간다. 태조 왕건을 구해내기도 했던 장군 신숭겸이 평산 신 씨의 시조인데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어제도 핏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태어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칠곡에 가면 1581년(선조 14)에 태어나 약관의 나이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천인 성명(天人性命)의 학문을 연구하였고, 예법과 덕행을 함양하여 선(善)을 즐기고 의(義)를 좋아한 신우덕을 모신 곤산서원이 있다. 

곤산서원에는 경도사(景道祠)와 영모재(永慕齋), 외삼문으로 이뤄져 있으며 경도사에는 곤산서원에 배향된 신우덕(申祐德), 신익황(申益愰)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영모재에는 진정공 신우덕의 후손 다수의 신주를 봉안해 강당보다는 재실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곳에 배향된 대표적인 평산 신씨의 인물은 앞서 말한 신우덕과 신익황(申益愰·1672~1722)이다. 신익황은일찍이 박번(朴蕃)에게 글을 배워 진작 학문의 성취를 보았고, 21세에 향시에 합격한 뒤에는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비가 오고 있지만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고 있다. 앞에는 넉넉하게 공간이 조성이 되어 있어서 차를 세우기가 편하다. 좁은 길을 갈 때가 많아서 어떤 곳은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는 많이 걸어서 들어가는 곳에 있으면 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그가 죽은 뒤 43년이 지난 1765년(영조 41)에 아들 염(琰)으로 인해 사헌부 대사헌에 추증됐고, 1784년(정조 8)에 사림들이 모여 그의 위패를 곤산서원(崑山書院)에 봉안한 신익황과 대대로 충효하고 청백함이 현저했으며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약목의 곤산서원에 제향했된 신우덕은 학자이며 지역의 리더이기도 했다. 

1783년(정조7)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세덕사를 곤산에 건립해 진정 선생과 극재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해 오다가 1786년에 서원으로 승호돼 1836년 봄 사우 경도사와 강당 명교당과 동재 서재와 문루를 갖추었으나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손됐다가 136년이 지난 2004년 곤산서원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정공 휘 우덕과 아들 판서공 휘 근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서 본당은 건물이 협소하고 퇴락해 구건물을 철거하고 신축(1996년 3월~1997년 5월)한 추원당과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만나는 세덕사는 거향 종족이 수시로 모여 경조돈목하는 신씨문중의 종실이고 현재는 곤산서원과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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