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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3. 2020

가문의 재실

괴산 함이재

요즘에는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유교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로 인해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 계층에게만 교육기회가 주어졌던 것이 조선시대라고 하지만 지금 시대라고 해도 평생의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없을 수는 없다. 지역마다 보면 거주지역과 주 거주민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나 의식, 기질이 달랐다. 

전국의 유력 가문이었던 재실을 가보면 관리가 안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묘지기나 산지기는 위토나 종산을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이후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천대받기를 싫어하여 나가 버려 재실의 관리가 안 되는 것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된 괴산 함이재는 옥구 장 씨 장륜의 재실이다. 조선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1980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지만 고택의 구조를 보면 서당이나 주거 형식의 특징을 하고 있다. 대청과 부엌을 갖춘 고택이다. 

장륜은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초기에 문신으로 이르렀다. 장륜의 호는 이암이라고 하였다. 함이재는 살림살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관리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로 걸어서 올라가 본다. 여름이라서 수풀이 상당히 많이 자라난 상태였다. 종도리 장혀의 묵서명에 “崇禎後六甲子三月九日巳時竪柱上樑酉坐卯向”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옥 지붕구조에서 들보에 직각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둘러 얹혀서 연직하중 또는 수평하중을 받는 가로 재인 종도리는 한옥에서 중요한 구조물이다. 

함이재에서 올라오면 사당인 명현사가 나온다. 명현사에서는 매년 옥구 장 씨의 춘향제를 지내고 있다. 

장 씨는 몇 개 본관을 제외하고 장 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일반적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을 세우고 삼한벽상삼중대광공신이 된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로 보고 있다. 괴산의 청안면을 돌아보니 조금 늦게 모내기를 한 곳도 눈에 뜨였다. 모내기를 늦게 한 곳은 보통 마늘이모작을 하기 위해 마늘을 수확하고 나서 심은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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