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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6. 2020

물맛 좋은 곳

괴산 각연사

사찰의 여름 오후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게 느껴진다. 인적은 없고 쨍한 햇살만 가득한 너른 경내에는 고요함만 가득하다. 가끔은 좋아하는 음악을 틀으면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사찰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약간 미안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아무 번뇌가 없을 때 그 마음이 열려 광대해진다고 한다. 


물맛이 좋다는 것은 사찰만의 매력이다. 상당수의 사찰에 가면 꼭 약수가 나오는 곳이 있다. 좋은 입지에 자리해서 물맛이 좋은 것인지 물맛이 좋은 곳을 찾아 사찰을 건립한 건지 모르겠지만 물맛 좋은 곳이라고 하면 사찰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초기에는 통일(通一)이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고려 혜종 때 새로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1648년(인조 26)과 1655년의 중수를 거친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有一)이 창건하였다.

이 절에는 무게 937.5㎏의 범종(梵鐘)과 법고(法鼓)·운 판(雲板)을 비롯하여, 보물 제1295호인 통일대사 탑비와 보물 제1370호인 통일 대사부도,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선적당(善跡堂)에 있는 부도가 남아 있다. 

7월이니 각연사를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가 보았다. 역시 물맛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심심한 여름의 풍경 속에 물맛만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괴산은 속리산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숱한 산들과 함께 하는 내륙으로  화양구곡, 쌍곡 등과 조선 성리학의 거두이자 사회 개혁을 꿈꾼 송시열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던 곳이다. 

보개산의 초록과 한적해 보이는 건물들과 오래된 고목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묘한 흡인력을 갖고 있지만 각연사는 웅장한 사찰은 아니다. 그냥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찾아가 보고 싶은 사찰이랄까. 

각연사라는 사찰의 뜻은 연못 속 석불로부터 각성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개산 자락에 승려 유일이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곳에 왔던 것이다.  각연사는 세월의 흐름 속에 쇠락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몇 차례 반복했다. 각연사에 심어져 있는 보리수나무는  수령 350년, 높이 18m의 괴산군 보호수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한 곳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 붓다 가야이며, 그 장소는 보리수 아래였다고 전해진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의 인기척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막 사찰 기행에 각연사는 딱 들어맞는다. 계단에 사용된 계단석 가운데 석재들이 눈에 띄고, 사찰 공사 중에 맷돌, 기름틀, 석등, 부도의 지붕돌 등도 자주 발굴되기에 그 규모가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꽃 피는 계절이면 좋은 사람들을 찾아가고 만남을 이어가겠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상은 잠시 접어야 한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으로 귀하게 만나는 만남이야 말로 큰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집이 갈라진 늙은 비로전 기둥에서 온갖 인생의 굴곡과 같은 순간들이 읽힌다. 인적이 없는 각연사에서는 모든 것을 다정하게 말을 건네받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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