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좋은 곳

괴산 각연사

사찰의 여름 오후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게 느껴진다. 인적은 없고 쨍한 햇살만 가득한 너른 경내에는 고요함만 가득하다. 가끔은 좋아하는 음악을 틀으면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사찰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약간 미안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아무 번뇌가 없을 때 그 마음이 열려 광대해진다고 한다.


물맛이 좋다는 것은 사찰만의 매력이다. 상당수의 사찰에 가면 꼭 약수가 나오는 곳이 있다. 좋은 입지에 자리해서 물맛이 좋은 것인지 물맛이 좋은 곳을 찾아 사찰을 건립한 건지 모르겠지만 물맛 좋은 곳이라고 하면 사찰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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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에는 통일(通一)이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고려 혜종 때 새로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1648년(인조 26)과 1655년의 중수를 거친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有一)이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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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는 무게 937.5㎏의 범종(梵鐘)과 법고(法鼓)·운 판(雲板)을 비롯하여, 보물 제1295호인 통일대사 탑비와 보물 제1370호인 통일 대사부도,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선적당(善跡堂)에 있는 부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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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니 각연사를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가 보았다. 역시 물맛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심심한 여름의 풍경 속에 물맛만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괴산은 속리산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숱한 산들과 함께 하는 내륙으로 화양구곡, 쌍곡 등과 조선 성리학의 거두이자 사회 개혁을 꿈꾼 송시열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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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개산의 초록과 한적해 보이는 건물들과 오래된 고목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묘한 흡인력을 갖고 있지만 각연사는 웅장한 사찰은 아니다. 그냥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찾아가 보고 싶은 사찰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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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연사라는 사찰의 뜻은 연못 속 석불로부터 각성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개산 자락에 승려 유일이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곳에 왔던 것이다. 각연사는 세월의 흐름 속에 쇠락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몇 차례 반복했다. 각연사에 심어져 있는 보리수나무는 수령 350년, 높이 18m의 괴산군 보호수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한 곳은 고대 인도 마가다국 붓다 가야이며, 그 장소는 보리수 아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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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의 인기척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막 사찰 기행에 각연사는 딱 들어맞는다. 계단에 사용된 계단석 가운데 석재들이 눈에 띄고, 사찰 공사 중에 맷돌, 기름틀, 석등, 부도의 지붕돌 등도 자주 발굴되기에 그 규모가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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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계절이면 좋은 사람들을 찾아가고 만남을 이어가겠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상은 잠시 접어야 한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으로 귀하게 만나는 만남이야 말로 큰 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집이 갈라진 늙은 비로전 기둥에서 온갖 인생의 굴곡과 같은 순간들이 읽힌다. 인적이 없는 각연사에서는 모든 것을 다정하게 말을 건네받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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