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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2. 2020

개와 나무의 고장

오수의견 김개인 생가지

중국의 새로운 나라들이 세워지고 나서 한반도가 침략을 당한 것은 크게 원나라와 청나라 때이다. 당시 주화론자와 척화론자들이 대척한 것은 동일한데 청나라 때 남한산성에서 주화를 주장한 것은 최명길이었고 원나라 때 강화도에서 강화가 이루어지도록 주장한 것은 최자다. 고려 중기의 대학자로 '해동공자(海東孔子)'로까지 불린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6대손으로 그가 남긴  저서로 가집(家集) 10권, 속파한집(續破閑集) 3권이 있었고, 최문충공가집, 삼도부 등이 남아 있다. 특히 보한집을 통해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인들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하며, 창조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가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 분석했었다. 

그가 쓴 보한집에서는 이야기가 하나 등장한다.  고려시대 거령현(오늘날의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았던 김개인과 그의 개와 관련된 이야기다.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이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 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고 한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끄기 위해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김개인은 살았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소개되었던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을 살렸던 개와 나무의 이야기는 이 지방의 고장 이름이 되었다. 훗날 '개 오'(獒) 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실제 실존인물이었던 김개인의 생가지는 십이연주 고을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생가지가 자리한 곳은 지사면이다. 오수면의 예전 이름은 둔남면(屯南面)이었고, 1992년 8월 10일 오수면(獒樹面)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 오수면은 조선시대에는 찰방역인 오수도(獒樹道)가 이 곳 오수리에 설치되어 11개의 역참을 관장했던 곳이다. 

임실군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휴머니즘을 부각해 충효의 고장임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2년 김개인 생각을 복원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 도의를 다하는 것이다. 김개인은 천년 전 신라시대 때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곳 영천에 살았던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흉년에 버려진 개를 데려다가 키웠다는데 그 개는 김개인이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는데 결국 그 고마움을 몫 숨으로 대신하였던 것이다. 

반려동물을 돈을 주고 사는 문화는 결국 없어져야 한다.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돈을 주고 구매하고 팔지는 않은 것인 맞지 않을까. 반려라는 것은 같이 걸어가는 것이지만 사람은 사람의 관점으로 동물을 대하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동물이 그걸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반려동물이 훨씬 많이 늘어난 요즘 오수의견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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