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의 변화

원도심의 오래된 가치

대전은 1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덕과 진잠 부근에만 주거지역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대전역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초기에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중구가 도심으로 발전하였다. 그 축은 지금의 중앙로로 옛 충남도청사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일본은 도심을 중심으로 중구, 서구, 동구, 북구, 남구 등으로 지명을 정한다. 지금의 대덕구와 유성구는 당시 대전의 행정구역이 아니었으므로 광복 이후 포함되면서 원래의 지명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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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으로서 지위를 유지하였지만 도시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갑천, 유등천변으로 도심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세계엑스포가 대전에서 열리면서 공군기지가 있었던 보라매공원과 둔산 일대가 급속한 발전을 시작하면서 원도심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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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부의 건물과 한국전쟁 이후에 막 지어진 건물들이 남아 있다. 대전역 역시 한국전쟁 당시에 폭파되어 새롭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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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근대건축물로 알려진 산업은행 건물은 한 안경회사의 소유다. 4개의 팔각기둥과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테라코타를 사용하여 장중한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는 근대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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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에는 ‘관광기업지원센터’가 대전시 중구 목척교 인근에 조성되는데 5년간 국비와 시비 84억 원이 투자돼 대전지역 관광 활성화에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 지하상가에 오면 옛 대전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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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의 중앙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문화는 중앙데파트의 흥망성쇠와 연결이 되어 있다. 도심에 땅이 부족하던 1970년대에 하천을 덮고 지은 것이 바로 중앙데파트다. 1974년에 건립되어 홍명상가와 함께 대전의 가장 중심적인 상가건물의 영화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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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1993년 세계엑스포가 열리고 둔산으로 중심상권이 모두 옮겨가면서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2008년에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철거가 되고 하천이 다시 복개되어 오늘의 모습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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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중앙데파트를 폭파하기 위해 일부 시설을 철거하고 폭약을 설치할 때 이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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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에 입점해 있던 상인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구도심의 쇠퇴와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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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근대문화의 가치를 많이 조명하지는 못했지만 최근에는 근대문화의 가치를 알고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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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는 대전역을 기점으로 중앙로의 축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산업은행, 목척교, (구)대전부청사, 옛충남도청, (구)충남도청 관사촌, 대전여중 강당, 국립농수산 품질관리원 등으로 이어진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던 대전의 도시 발달사의 정점은 197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대전은 둔산뿐만이 아니라 많은 부도심을 만들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대전 120년의 발전 역사를 대전역은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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