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14. 2020

문묘 18현(东国十八贤)

화성의 남양향교

어제 세도의 시대 100년을 썼었다. 지식에 대한 깊이 없는 양반들이 자신의 입지를 더 공고하게 하기 위해 여자에 대한 왜곡된 관념과 신분 차이를 더욱더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왜곡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양반과 유학자에 대한 선입견은 그때 만들어졌다. 깊이 없는 지식은 차별적인 지위를 만들려 하고 실천 없는 책 읽기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과 사람, 그리고 맑고 진실된 그 사유의 발자취를 남겼던 사람들이 향교나 서원에 18현으로 모셔져 있다. 

화성이라는 도시는 오랜 시간 연쇄살인사건의 이미지에 가려진 곳이었지만 갈만한 여행지가 많은 매력적인 도시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이미지가 쇄신되어 가고 있으며 2020년에는 경기도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언택트 관광지 위주로 소개를 하고 있다. 언택트 관광지중 한 곳인 남양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된 곳이다. 큰 도로변에서 안쪽에 자리한 남양향교는 1873년에 이전된 곳이지만 창건된 것은 1397년(태조 6)이다.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대성전은, 맞배지붕의 목조 와가(木造瓦家)로서 1976년과 1983년에 보수하였다. 대성전에 모셔진 우리나라 18현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8명의 현명한 사람이었으며 정신적인 지주라고 볼 수 있다. 주차장에는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았을 것 같은 개 한 마리가 무척 편하게 쉬고 있었다. 

남양향교의 외삼문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대성전에 모셔진 인물 중 두 번째에 배향된 문창후 고운 최치원이 당연히 가장 친숙한 사람이다. 경주 최 씨의 시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은 심오한 이치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끌린다. 대전이나 가까운 지역에 있는 사람 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신독재 김집, 사계 김장생 등 네 명이나 18현에 포함이 되어 있다. 

날이 좋지만 요즘에는 사람이 없는 곳을 소개하기 위해 대부분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와 대화를 하다 보니 혼잣말이 늘기 시작했다. 더우면 혼자서 '쉴까?'라고 하면 '그래 쉬자. 음료수라도 하나 사자'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지 않는다는 문정공 우암 송시열과 행동과 언어가 모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정공 동춘당 송준길은 그 색깔을 보여준다.  이 땅의 명현들이 배향된 18현은 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성혼, 이이, 조헌,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김집, 박세채다. 

겉핥기식 지식 교육과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얼룩진 민족 정체성과 흔들리는 국가 정세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현들이 가르침이다. 대청에 앉아서 음료를 한잔 마시면서 남양향교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앞으로 한국의 대통령도 호학 군주 정조처럼 책을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이 없는 신하들은 정조와 대면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여행한다는 랜선 여행이나 언택트 관광의 무게가 실리는 요즘 오히려 옛사람들에게서 지혜를 배우는 것이 필요한 때다. 점점 트렌드가 빨리 변하고 많은 것이 새롭게 등장하지만 오래된 것의 가치는 오래될수록 점점 더 빛이 나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랜선 설성(雪城)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