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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2. 2020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이 음성은 아니지만

창원은 가끔씩 가는 도시라서 그곳의 출생 인물들을 만나볼 때가 있다. 그중에서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를 쓴 이원수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노래는 알아도 이원수라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 동시 고향의 봄을 썼다고 한다. 이원수는 어린이를 글 가운데 두고 어린이다운 마음의 울림을 목표로 시를 썼을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화를 남겼다. 

현재 생존해 있던 세상을 떠났든 간에 고향에 생가가 남아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가 있다. 본인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후손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있다. 역사적인 인물의 고택이나 생가를 많이 보는 편인데 가끔씩 저런 생가가 남아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음성군에서 태어난 반기문의 생가는 원남면에 있는데 딱 고향의 봄이 연상되는 그런 황토의 초가집이다. 

생가 앞에는 지은 지 20년이 채 되지 않는 보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반기문 생가 앞 이 보덕정은 2002년에 완공된 것으로 참의공 12 세손이 기증한 것인데 보덕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정자다. 반기문 생가의 뒤에 자리한 보덕산은 음성군 원남면 동부의 평야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서쪽을 바라보면 크게 보이는 산이므로 일명 큰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보덕정앞으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이 조성이 되어 있는데 연지다. 둘레를 한 바퀴 돌으면 200미터쯤 될까. 한 열 바퀴쯤 돌으면 하루 운동이 될 수도 있지만 그냥 반기문 생가를 중심으로 큰 산을 아우르는 비채길을 걷는 것이 더 괜찮을 듯하다. 

고향의 봄은 언제 불러봤는지 모르지만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서 흥얼거려본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연꽃들이 만발한 음성의 보덕산과 나지막이 반기문 생가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고 있다. 

한 장수가 놀러 왔다가 살구꽃 향기에 취해 바위에 누워 낮잠을 주었는데 바위가 녹아 이런 장수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바위를 어우러만지면 장수하는지 알았는데 필자가 생각했던 그 장수가 아니라 무관이었다. 이 장수바위는 큰 일을 앞에 두고 서로 다투면 모두 잃는다는 교훈을 삼고자 이곳에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고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낮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러나 잠시 머물고 싶은 초가집 한 채가 뒷산과 어우러져 있는 이런 풍경 말이다. 안동의 하회마을 등에 가보면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너무 담벼락을 높게 해 놓아서 아쉬울 때가 있었다. 

생가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반기문 평화기념관이 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실내시설은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는 민주주의, 생명 존중, 더불어 사는 삶, 정의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려고 했었다. 그러고 보니 반기문이 사무총장으로 근무했던 평화를 의미하는 유엔과 이원수가 쓴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피는 산골은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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