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生涯) 길

여유 있게 걸어보는 송촌동

사람의 생애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교육> 일> 여가로 이어지는 발전주의의 단선적 생애주기를 살아왔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었을 뿐이다. 2020년의 변화만큼이나 빠른 변화가 생애주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교육> 노동> 여가가 병행되는 뉴 노멀 시대의 생애주기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에서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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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꽃이 필 때쯤 한국이 복잡 복잡했는데 벌써 적막한 공산에 봄은 절로 흘러가고 한여름 속으로 들어왔다. 살고 있는 주변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시간이다. 송촌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동춘당 생애길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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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촌동의 도로와 주거지역을 완충하는 완충녹지에도 길이 조성이 되어 있다. 송준길 선생의 자는 명보이고 참 선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이 생애길이며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석구석에 동춘당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재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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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길의 시작이며 동춘당공원으로 가는 녹지길에는 상강려애각이 있다. 삼강(三綱)이란 임금과 신하(忠) 부모와 아들(孝) 남편과 아내(烈)를 말하는데 이 마을에 이 셋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국가에서 정문을 내린 인물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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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송촌지구 택지개발 사업으로 이곳의 원형이 훼손되고 옛 정취가 사라질 위기에 이르자 대전광역시 도시개발공사와 동춘당 종중에서는 이 마을의 전통과 정신이 잊히는 것을 아쉬워한 나머지 삼강려 애각(三綱閭 涯刻 : 삼강려라 새겨진 바위 한쪽)의 바위를 떼어내어 이곳에 보존한 것이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송촌동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 오래된 대전의 주거단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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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 송 씨가 송촌동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데에는 한 여성의 노력이 있었다. 쌍청당을 건립한 송유의 어머니는 고흥 류 씨로 송극기의 부인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을 데리고 회덕의 시가에 내려왔던 것이다. 회덕 황 씨와 은진 송 씨가 회덕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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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구의 어떤 공원을 가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이제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중년, 장년, 노년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정신이 살아 있다면 생애는 계속 젊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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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앞에는 1665년(현종 4) 정려의 오른쪽 암반 위에 ‘열부고려진사송극기처고흥류씨지려(烈婦高麗進士宋克己妻高興柳氏之閭)’라고 음각한 비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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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송촌동을 돌아다녔을 때 동춘당의 흔적들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전혀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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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파 학자였던 장인 정경세를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뿐 아니라 글씨까지 수용하였던 동춘당 송준길이 살았을 때는 이곳은 회덕현이었고 불과 1989년까지만 하더라도 신탄진을 비롯하여 이 곳 부근까지 대덕 군이라는 지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옥천군처럼 대전과 다른 행정구역이었던 대덕군은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이 될 때 대덕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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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 송준길을 생각하면서 생애길을 돌아보니 무릇 사람이 한 몸 공경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애에서 별다른 한 일 없이 늙어 죽을 때 '망'이라는 한 글자로 평생을 마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그 흔적을 진하게 남겨 생애길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호를 붙였다. 이곳은 2011년에 행전안전부와 대전광역시의 지원을 받아서 대덕구에서 조성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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