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22. 2020

생애(生涯) 길

여유 있게 걸어보는 송촌동

사람의 생애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교육> 일> 여가로 이어지는 발전주의의 단선적 생애주기를 살아왔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었을 뿐이다. 2020년의 변화만큼이나 빠른 변화가 생애주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교육> 노동> 여가가 병행되는 뉴 노멀 시대의 생애주기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에서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도화 꽃이 필 때쯤 한국이 복잡 복잡했는데 벌써 적막한 공산에 봄은 절로 흘러가고 한여름 속으로 들어왔다. 살고 있는 주변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시간이다. 송촌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동춘당 생애길을 알리고 있다. 

송촌동의 도로와 주거지역을 완충하는 완충녹지에도 길이 조성이 되어 있다. 송준길 선생의 자는 명보이고 참 선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이 생애길이며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석구석에 동춘당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생애길의 시작이며 동춘당공원으로 가는 녹지길에는 상강려애각이 있다. 삼강(三綱)이란 임금과 신하(忠) 부모와 아들(孝) 남편과 아내(烈)를 말하는데 이 마을에 이 셋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국가에서 정문을 내린 인물들이 살았다.

1994년 송촌지구 택지개발 사업으로 이곳의 원형이 훼손되고 옛 정취가 사라질 위기에 이르자 대전광역시 도시개발공사와 동춘당 종중에서는 이 마을의 전통과 정신이 잊히는 것을 아쉬워한 나머지 삼강려  애각(三綱閭 涯刻 : 삼강려라 새겨진 바위 한쪽)의 바위를 떼어내어 이곳에 보존한 것이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송촌동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 오래된 대전의 주거단지가 되어버렸다. 

은진 송 씨가 송촌동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데에는 한 여성의 노력이 있었다. 쌍청당을 건립한 송유의 어머니는 고흥 류 씨로 송극기의 부인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을 데리고 회덕의 시가에 내려왔던 것이다. 회덕 황 씨와 은진 송 씨가 회덕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대전 대덕구의 어떤 공원을 가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이제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중년, 장년, 노년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정신이 살아 있다면 생애는 계속 젊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곳 앞에는 1665년(현종 4) 정려의 오른쪽 암반 위에 ‘열부고려진사송극기처고흥지려(烈婦高麗進士宋克己妻高興柳氏之閭)’라고 음각한 비를 세우고 있다. 

어릴 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송촌동을 돌아다녔을 때 동춘당의 흔적들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전혀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영남학파 학자였던 장인 정경세를 통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뿐 아니라 글씨까지 수용하였던 동춘당 송준길이 살았을 때는 이곳은 회덕현이었고 불과 1989년까지만 하더라도 신탄진을 비롯하여 이 곳 부근까지 대덕 군이라는 지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옥천군처럼 대전과 다른 행정구역이었던 대덕군은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이 될 때 대덕구가 된다. 

동춘당 송준길을 생각하면서 생애길을 돌아보니 무릇 사람이 한 몸 공경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애에서 별다른 한 일 없이 늙어 죽을 때 '망'이라는 한 글자로 평생을 마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그 흔적을 진하게 남겨 생애길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호를 붙였다. 이곳은 2011년에 행전안전부와 대전광역시의 지원을 받아서 대덕구에서 조성한 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향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