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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4. 2020

비 오는 날

칠곡에 자리한 오래된 해은 고택

비 오는 날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서 비 오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운치 있는 것도 없다. 차 한잔을 곁들이면서 여름에 더 맛있는 수박화채를 먹는다면 그 시간만큼은 충만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하회마을을 잘 알지만 영남지방에 그곳 말고도 3대 반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영남지방 3대 반촌(하회마을, 양동마을, 매원마을)의 하나로 알려졌는데 그중 칠곡에 자리한 매원마을은 200여 채가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화마로 사라지고 지금은 60여 채만 남아 있다. 

마을의 형태가 매화와 닮았다고 해서 매원마을이라고 불여진 곳에 해은 고택이 있다. 해은이라는 의미는 바다에 숨어 있다는 의미인데 조선 정조 12년에 이동유(1768~1836) 건립 그의 소자인 이이현 해은 고택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안쪽으로 들어가면 해원 고택이 나온다. 

고택을 지은 이동유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그가 이 고택을 지을 때는 조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80여 년 만에 남인 채제공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며 다음 해인 정조 13년(1789년)에는 노론의 상당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묘를 옮긴다.  지인을 데리고 화성에 갔을 때 가본 곳이다. 배봉산(拜峰山: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기슭에 초장한 것을 1789년(정조 13)에 정조가 이곳으로 이장하고 현륭원(顯隆園)으로 명명하였다. 그 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승격하였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해은고택이 먼저 맞이해준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해은고택의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다. 고택은  자연석으로 쌓기를 하여 기단(基壇)을 다소 높게 조성한 후 주초(柱礎)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날이 시원해서 그런지 몰라도 고택이 정감이 있어 보인다. 가구는 3량가로 대량(大樑) 위에는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종도리(宗道里)를 받게 한 간결한 결구법(結構法, 얽거나 짜서 만드는 것)으로 만들어두었다. 

대청에 앉아서 잠시 쉬어본다. 대청과 사랑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달고 2칸의 사랑방 사이에는 4짝 미세기문을 달아 필요에 따라 4칸 전통문으로 사용할 수 있게 꾸며두었다. 

비가 오는 날 지인과 함께 비 내리는 밖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신다면 딱 좋은 시간이다.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고택은 관리가 잘되고 있다. 이 마을에는 광주 이 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인 광주이씨중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이며 칠곡에 입향한 중조(中祖)로 그 후손이 정착하여 450여 년 동안 번성하여 돌밭, 매원, 웃갓, 한실 등지에서 집성을 이루어 거주하였다. 

마당에는 배롱나무꽃이 여름을 알리듯이 피어있다. 

안채를 살포시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동유가 살았던 18세기에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사유에만 갇혀 있지 않았던 시대로 지식인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다 기록으로 남겼다. 바다 생물을 소재로 삼은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대표적인 것이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음식을 주제로 한 책 역시 많이 남아 있는데 해은고택의 후손들은 매원 순금된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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