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칠곡에 자리한 오래된 해은 고택

비 오는 날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서 비 오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운치 있는 것도 없다. 차 한잔을 곁들이면서 여름에 더 맛있는 수박화채를 먹는다면 그 시간만큼은 충만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하회마을을 잘 알지만 영남지방에 그곳 말고도 3대 반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영남지방 3대 반촌(하회마을, 양동마을, 매원마을)의 하나로 알려졌는데 그중 칠곡에 자리한 매원마을은 200여 채가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화마로 사라지고 지금은 60여 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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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형태가 매화와 닮았다고 해서 매원마을이라고 불여진 곳에 해은 고택이 있다. 해은이라는 의미는 바다에 숨어 있다는 의미인데 조선 정조 12년에 이동유(1768~1836) 건립 그의 소자인 이이현 해은 고택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안쪽으로 들어가면 해원 고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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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지은 이동유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그가 이 고택을 지을 때는 조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80여 년 만에 남인 채제공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며 다음 해인 정조 13년(1789년)에는 노론의 상당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묘를 옮긴다. 지인을 데리고 화성에 갔을 때 가본 곳이다. 배봉산(拜峰山: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기슭에 초장한 것을 1789년(정조 13)에 정조가 이곳으로 이장하고 현륭원(顯隆園)으로 명명하였다. 그 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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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가자마자 해은고택이 먼저 맞이해준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해은고택의 오른편에 만들어져 있다. 고택은 자연석으로 쌓기를 하여 기단(基壇)을 다소 높게 조성한 후 주초(柱礎)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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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시원해서 그런지 몰라도 고택이 정감이 있어 보인다. 가구는 3량가로 대량(大樑) 위에는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종도리(宗道里)를 받게 한 간결한 결구법(結構法, 얽거나 짜서 만드는 것)으로 만들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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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 앉아서 잠시 쉬어본다. 대청과 사랑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달고 2칸의 사랑방 사이에는 4짝 미세기문을 달아 필요에 따라 4칸 전통문으로 사용할 수 있게 꾸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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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지인과 함께 비 내리는 밖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신다면 딱 좋은 시간이다.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고택은 관리가 잘되고 있다. 이 마을에는 광주 이 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인 광주이씨중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이며 칠곡에 입향한 중조(中祖)로 그 후손이 정착하여 450여 년 동안 번성하여 돌밭, 매원, 웃갓, 한실 등지에서 집성을 이루어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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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배롱나무꽃이 여름을 알리듯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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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를 살포시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동유가 살았던 18세기에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사유에만 갇혀 있지 않았던 시대로 지식인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다 기록으로 남겼다. 바다 생물을 소재로 삼은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대표적인 것이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음식을 주제로 한 책 역시 많이 남아 있는데 해은고택의 후손들은 매원 순금된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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