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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30. 2020

대나무의 사찰

구미 선산 비봉산(飛鳳山)의 서황사

구미에 살았던 사람은 구미와 선산을 구분하듯이 말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구미와 선산이 다른 행정구역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산업화되면서 구미시가 선산을 품었지만 선산에는 많은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선산의 비봉산에는 봉새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봉새가 날아가버리면 비봉산이 기운이 죽기 때문에  봉황의 짝을 지어 주기 위해 뒷산을 황산(凰山)이라 이름 지어 짝을 맞춰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봉(鳳)은 수컷이요, 황(凰)은 암컷이기 때문이다. 


그 비봉산 자락에 서황사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의 옛 이름은 죽장사로 선산에 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산읍(善山邑) 사방동네를 죽장(竹杖)이라 하여 대나무를 심어 대나무 열매로 먹이를 대어주었다고 한다.

차를 마실수 있는 마실도 있으니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들려보아도 좋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명(明) 나라 장군(將軍)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산을 보고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병졸로 하여금 산맥을 끊고, 불을 피우고 큰 쇠못을 꽂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이다. 

고요하기만 한 시간에 서황사의 대웅전과 오층 석탑의 균형이 좋다. 전설로는 두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서로 재주를 자랑하다가 누가 먼저 탑을 건립하겠는가 하고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오빠는 다른 곳에서, 누이동생은 죽장사(竹杖寺)에서 석탑(石塔)을 세우게 되었는데 누이가 먼저 웅장한 오층탑을 세워서 이겼다는 전설이 있다.

시간이 지나 산의 기운이 다했는지  죽장사(竹杖寺)에는 많은 애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죽장사에서 비봉산의 봉황이 깃드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로 서황사(瑞凰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2층 받침돌을 갖추고 있지만, 각층의 몸돌 양쪽에는 모서리 기둥이 없어 이형(異型)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이 석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의 유형에 속한다.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부(塔身部)와 상륜부(相輪部)를 올린 신라 석탑의 모습을 따르고 있는데, 바닥돌에서 상륜부까지 100여 개가 넘는 많은 돌로 결구(結構) 한 것이 특이하다.

석탑의 안쪽에는 작은 불상이 있는데 이모 습도 조금은 독특한 양식이다. 남쪽면에는 감실(龕室)이 있으며 현재 그 안은 비었지만, 원래 불상을 봉안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국보인 이 석탑에 비해 사찰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홀로 독야 청정하게 경내에 자리 잡고 있는 탑이 꽤나 묵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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