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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31. 2020

공간의 한국사

아름다운 물결과 호수변의 취백정

공간의 이름마다 만들어진 그 의미가 있으며 그 역사를 가지고 내려와 그 가치가 있다. 대청호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신탄진은 금강이 휘감아 도는 곳이어서 물이 많았던 곳이다. 그중에 미호라고 하는 지역은 대덕구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너른 금강변이 호수와 같아서 물결무늬 미자와 호수 호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해서 미호 마을로 불렀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선비들의 모습인지라 미호 서원을 세웠다.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우암 송시열(1607~1689), 송준길의 제자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을 삼송(三宋)이라고 하는데 그중 송규렴이 서원을 세웠던 것이다. 

송규렴이 지은 미호 서원의 일부 건물이 취백정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취백정은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는 곳이지만 미호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각종 종교나 철학은 도시의 성숙과 공간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며 이를 세계사의 축의 시대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선비들의 학문의 기반인 유교 역시 그 시대에 시작되었다. 

미호동의 안쪽으로 들어오면 논들과 안으로 들어가면 구리 고개, 벌말, 새터말, 안골, 숫골이라는 지명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은 미호동에 많은 애착이 있다고 한다. 송규렴이 세운 미호 서원에  제자들이 있었을 때 어떤 풍광이었을까. 

미호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흙이 유실될 것을 염려해서 일부 도로에 천등으로 보강을 해놓은 상태다. 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길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나온다. 기록을 살펴보면 정조 때 이긍익(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따르면, 미호 서원은 “숙종 43년 정유(1717)년에 세웠으며 사액하였다. 이름은 송규렴, 호는 제월당으로 참찬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희’ 공이다.”라고 적고 있다.

오래간만에 다시 취백정을 만나본다. 송준길의 동춘당, 옥오재의 송상기, 미호 서원의 부속건물이었으나 취백정은 송재희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현판 ‘사호각(四皓閣)’도 (영조가 내려준 어필을) 송재희가 자신의 아호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영조가 어필로 내렸다는 사호각의 사호는 상산사호(常山四皓)의 약어로, 진시황(秦始皇) 때 난세를 피하여 상산에 은거했던 네 늙은이라고 하는데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희었으므로 이렇게 일컬었다.

매우 아담한 정자다. 그렇지만 알차게 만들어져 있으며 기초와 전체적인 구조가 반비례하지만 그래서 한옥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덕구는 그동안 에너지 카페를 통해 에너지 활동가 학교를 열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민·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주민 주도로 에너지 자원을 조사했다고 한다. 대덕구에는 법동에 에너지 카페 1호점과 오정동에 2호점을 내고 이곳 미호동에도 에너지 카페 3호점이 곧 문을 연다. 기후 도서관, 에너지 전환 생태마을, 생태관광을 아우르는 기후생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는 카페의 이름은 가칭 '태양지공 도서관'이다.

환경과 자연 속에 스며든 건물 하면 한옥만 한 것이 없다. 에너지 카페와 연결해서 취백정과 같은 고택도 활용을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적 경제 활성화, 행복이라는 키워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취백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무궁화를 국화로 한다는 법률이나 조례는 없지만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5천 년 역사를 이어온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다. 무궁화를 서양에서는 샤론의 장미라 고도 부르며 한자로 근화, 훈화, 일급, 일화, 번리초등으로 불리며 나무껍질과 뿌리를 각종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제로 써왔다. 무궁화 꽃송이를 따서 꽃심을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우려 마시는 생 무궁화차도 좋다는데 언제 한 번 마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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