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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4. 2022

오래된 도시

상주에 자리한 태평성대경상감영공원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풍경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 경상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갔던 곳은 바로 경주와 상주라는 도시였다. 두 곳 모두 오래된 도시였으며 여러 번 중심지가 옮겨지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며 해외까지 나가는 고등학교들도 있지만 불과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수학여행의 1번지는 신라의 고도였던 경주였다.

상주라는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경주와 상주의 이름을 딴 경상도에서는 경주와 비슷한 수준의 오래된 도시가 상주다. 사람들에게 잊혀갔지만 오래된 도시이며 경상도의 중심지였던 상주로 들어가 본다.  

이곳은 상주의 태평성대경상감영공원이다. 옛 상주의 영광을 재연하자 라는 취지로 상주의 대표 문화 공간 복합단지로 조성되었는데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청유당, 제금당 등 18개 동의 전통한옥시설 등이 복원되어 있다. 첫 느낌은 바로 여유롭다이다. 옛날에는 앞에 사람들이 살던 민가가 있었을 텐데 그 민가까지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오래된 도시의 느낌이 든다.

지금이야 경상도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우도와 좌도로 분도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는 것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조세와 행정권한 때문이다. 행정구역이 확대되면 그만큼의 재량권도 많아지고 중앙으로 올라가게 될 세금 혹은 내려받게 될 세금의 범위가 확대된다. 대전 남선공원이라는 곳에 가면 망이 망소이의 난의 조형물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난을 일으킨 것은 바로 행정구역 문제로 인한 폐단 때문이었다.

경상감영의 앞쪽으로 와서 배치도를 살펴본다. 경상도는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을 우도(右道), 동쪽을 좌도(左道)로 나누어 좌도는 전대로 경주부윤이 맡고 우도는 상주목사가 맡아 해당 도의 관찰사를 겸하게 하였다. 부의 우두머리인 부윤은 종 2품 외 관직이고 목사는 정 3품이니 경주에 무게(그래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많이 간 건가?)를 더 실은 셈이다. 참고로 직계가 정 1품, 종 1 품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종 1품은 정 1품보다 낮다는 의미보다 從 쫓을 종장에는 '버금간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상주에 경상감영이 오게 된 것은 언제일까. 바야흐로 경상도의 중심이 되었던 때는 경상도의 우 · 좌 분도(分道)가 당시 조세 체계의 혼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자 이듬해 원래대로 환원하고, 대신 경주에 있던 감영을 상주로 옮겨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하게 했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상주는 명실공히 지역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당시 상주에서는 왜군에게 조선군이 대패를 하면서 왠지 정이 안 갔던 모양이다. 그 후로 도시로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안으로 들어오니 깔끔하게 만들어진 공간에 잘 지어진 관아의 건물들이 보인다. 경상감영정도가 되면 일반적인 관아와 등급이 다르기 때문에 조선왕실에 버금갈 정도로 갖추어둔 것이 특징이다. 그 후로 임진왜란 때 경상감영은 지금 대구광역시의 전 지역인 대구부로 옮겨지게 된다. 그것도 잠시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대구는 왜군의 손에 파괴되고 달성에 있던 감영도 불타버린 뒤, 감영은 다시 내륙으로서 대도호부(大都護府)가 설치되어 있었던 안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지금 안동에 경상북도청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도, 좌도로 갈라졌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경상감영은 여러 곳으로 옮겨졌던 역사는 지역은 달리했지만 오래된 도시의 영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감영은 정치 행정의 중심지인 동시에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술과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인 상주의 옛 경상감영을 돌아보았다. 동증서에게 하늘의 의지는 기본적으로 만물에 대한 애정과 복리, 즉 인에 있다고 보았다. 모든 것들은 우발적인 마주침으로 발생한다고 했던가. 상주의 역사는 그렇게 지나오면서 오래된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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