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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31. 2020

매향암각 (埋香岩刻)

사천 향포산 처녀 바위 굴

삼천포 시라는 행정구역이 있었을 때가 25년 전이다. 남해로 내려가는 도로를 타는데 얼떨결에 끝까지 가면 삼천포로 간다고 해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서부경남의 관문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며 1956년에 삼천포읍과 남양면을 합하여 삼천포시로 승격·독립했으니 40여 년간 시가 유지되었다. 

남일대해수욕장으로 가기 전에 낮은 산이 있는데 향 포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향포산에는 예전부터 이 지역사람들이 처녀 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글이 새겨져 있다. 사천시와 병합되면서 삼천포 매향암각에서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으로 불리며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을 보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사천에서 흐르는 물이 남해로 합류되는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다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는 바위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호를 위해 펜스가 쳐져 있다.  바위의 북벽 가로 140㎝, 세로 80㎝ 정도의 평면에 모두 23행 174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민들은 이 암각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다만 구전으로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러왔다 한다. 

매향은 고려말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그때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말에 위정자들의 횡포로 피폐해진 백성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향을 바다에 묻고 그 향이 올라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렇지만 이곳의 매향암각의 주인공들은 조금 다르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일정 신분의 관리 및 지배계층이라는 점, 매향의 의식이 수륙재와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비문의 1∼8행이 발원문이고 9∼22행은 참여자, 23행은 주관한 승려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매향을 해둔 곳은  구량량(仇良梁)의 용두머리라고 한다. 구량량은 조선 초기 박도에 인접한 구량량 만호진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정박처가 되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향촌동의  매향암각 매향비는 1418년(태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자연 암벽의 편평한 곳에 적어 매향의 주도자ㆍ연대ㆍ위치ㆍ매향 집단ㆍ발원자 등 모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매향 의식을 할 때 대중의 삶도 피폐할 때였다. 특히 남쪽 바닷가로는 왜구의 노략질도 끊이질 않았던 시기에 매향을 했다. 매향(埋香)이란 글자를 그대로 풀면 ‘향나무를 묻는다’는 뜻이다. 향나무를 묻고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 스스로 물 위로 떠오른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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