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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암각 (埋香岩刻)

사천 향포산 처녀 바위 굴

삼천포 시라는 행정구역이 있었을 때가 25년 전이다. 남해로 내려가는 도로를 타는데 얼떨결에 끝까지 가면 삼천포로 간다고 해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서부경남의 관문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며 1956년에 삼천포읍과 남양면을 합하여 삼천포시로 승격·독립했으니 40여 년간 시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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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대해수욕장으로 가기 전에 낮은 산이 있는데 향 포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향포산에는 예전부터 이 지역사람들이 처녀 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글이 새겨져 있다. 사천시와 병합되면서 삼천포 매향암각에서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으로 불리며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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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을 보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사천에서 흐르는 물이 남해로 합류되는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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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는 바위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호를 위해 펜스가 쳐져 있다. 바위의 북벽 가로 140㎝, 세로 80㎝ 정도의 평면에 모두 23행 174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민들은 이 암각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다만 구전으로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러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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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은 고려말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그때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말에 위정자들의 횡포로 피폐해진 백성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향을 바다에 묻고 그 향이 올라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렇지만 이곳의 매향암각의 주인공들은 조금 다르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일정 신분의 관리 및 지배계층이라는 점, 매향의 의식이 수륙재와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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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의 1∼8행이 발원문이고 9∼22행은 참여자, 23행은 주관한 승려명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매향을 해둔 곳은 구량량(仇良梁)의 용두머리라고 한다. 구량량은 조선 초기 박도에 인접한 구량량 만호진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정박처가 되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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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의 매향암각 매향비는 1418년(태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자연 암벽의 편평한 곳에 적어 매향의 주도자ㆍ연대ㆍ위치ㆍ매향 집단ㆍ발원자 등 모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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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 의식을 할 때 대중의 삶도 피폐할 때였다. 특히 남쪽 바닷가로는 왜구의 노략질도 끊이질 않았던 시기에 매향을 했다. 매향(埋香)이란 글자를 그대로 풀면 ‘향나무를 묻는다’는 뜻이다. 향나무를 묻고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 스스로 물 위로 떠오른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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