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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5. 2016

히말라야

의미도 없고 재미도 놓쳤다. 

자본이 있으면 안 되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 만들 수 있다. 특히 영화업계는 이것이 더욱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의 선택권을 박탈해버리면 된다. 다양한 영화가 있겠지만 그 시간에 볼 영화가 그것뿐이 없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영화 히말라야가 그렇다. 이건 산악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화에 기반하여 잘 만들어진 그런 영화도 아니다. 


실존인물인 엄홍길과 산악인들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여기에 아주 뻔하디 뻔한 한국식 신파를 집어넣었다. 그 결과 클리프 행어나 버티칼 리미트 같은 다이내믹함도 없고 에베레스트같이 생생함도 없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구성하여 산을 오르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과 그들을 데리고 드디어 목표를 이루고 자신의 갈길을 가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찾으러 다시 산으로 간다는 설정... 


산악인은 산에 묻힌다. 


희박한 공기와 언제든지 죽을 위험이 있는 도전이 있는 산행은 산악인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은 동료를 데리고 온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자신 몸 하나 추스리기도 벅찬 그곳에서 산악인들은 암암리에 동료에게 짐이  안 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 같은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산악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자신의 후배였던 박무택의 시신을 가지러 자신의 동료를 위험에 몰아넣은 엄홍길의 행동은 일반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산악인으로 볼 때 실격이다. 


실제는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다. 


영화는 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건 사실이지만 너무나 감성적으로만 그리려고 노력한 티가 팍팍 난다. 티가 안 나면 좋겠지만 티가 너무 나주니 산을 타는 감성팔이에 집중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산을 전문으로 타는 산악인들은 소수이고 그들끼리의 연대감은 남다르다. 그러나 히말라야에서 처럼 그런 식으로 연습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체력을 키우고 자신들만의 방식이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도 아니고 훈련 방식이나 소통이 참 한국영화 답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중간중간에 나오는 황정민의 내레이션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다고 할까. 영화 속에서 황정민의 목소리는 적당하지만 내레이션 하기 위한 목소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조성하가 더 괜찮지 않았을까? 


한국의 관객들은 작위적인 설정을 좋아한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히말라야가 욕을 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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