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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2. 2020

죽음과 종교

보령의 고인돌 이야기

선사시대의 흔적을 살펴보면 수많은 믿음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보다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종교가 생겨났고 유럽 같은 경우 영성이 문화의 시작이었지만 미래에는 신화로 남게 되고 인간은 교리나 초자연적인 힘보다는 자연과 과학을 더 믿게 된다. 즉 죽음이 멀어지게 되면 과학이 종교를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과의 한 종류인 부사가 나오는 계절이라서 보령의 부사방조제를 찾아가 보았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혼자서 의미를 찾아본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과 보령시 웅천읍을 연결하는 방조제인 부사방조제의 부사(扶士)와 사과의 품종인 부사(富士)는 한자가 다르다. 

선사시대의 재력과 힘을 과시하는 것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 무덤을 만들 때 얼마나 큰 돌을 끌어다가 족장의 사후를 지켜주는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 것이다.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선사시대에 취락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음을 의미한다. 보령 웅천읍 죽청리에는 수십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에 고인돌이 가장 크고 대표적이며 보령지역에서는 드물게 북방식 형태를 볼 수도 있다.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뉜다. 세상이 변화를 시작할 때 그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성 인구 즉 고령 인구들이다. 한국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교회에서 감염이 많이 되는 연령층도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여전히 고령인구는 종교를 가지겠지만 교리가 아니라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죽청리가 포함되어 있는 웅천읍은 원래 보령군 웅천면이었으나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되면서 읍으로 승격했다. 대창리 일대에는 남포오석을 가공하는 석공장이 있는데 돌로 유명한 웅천에는 편마암 바위가 많은데 고인돌 역시 편마암이 대부분이다.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실개울에도 폭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죽청리 고인돌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363-3에 있는데 고인돌군으로 총 12기가 있는 선사(청동기 이전) 시대의 유적이다.  덮개돌이 그리 두껍지 않고 굄돌이 높아서 겉모양이 탁자 모양인 북방식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북에서 많이 발견되는 양식의 고인돌인데 보령까지 내려온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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