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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3. 2020

나의 서원 (書院)

최치원을 모시기 위해 창건한 무성서원

너무나 먼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하지만 최치원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학문, 덕행을 찾아가다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경주 최 씨의 시조라고 알려진 최치원은 많은 글과 행적을 남겼다. 물론 향교 등에 향사가 되어 있지만 최치원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서원을 찾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는 발걸음이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생사당(生祠堂: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창건하여 태산사(泰山祠)라 불려졌던 곳이다. 

정읍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읍은 역사 속에서 동학농민운동의 발상지다. 정읍에서 유명한 내장산 국립공원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해 전국에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여름에는 물에서 노는 것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무성서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흘러내려오는 천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정읍에는 이곳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뿐만이 아니라 수성동의 충렬사 등의 사우와 태인향교 대성전, 고부 향교 대성전을 비롯하여 이 있으며 동죽 서원(東竹書院: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7호)·도계서원(道溪書院: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등이 남아 있다. 

최치원을 모시며 태산사로 창건하였는데  고려 말에 쇠약해졌다가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武城)’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 경 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날이 덥지만 적어도 최치원을 추모한 곳이라고 하기에 더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祠宇)·현가로(絃歌樓)·명륜당(明倫堂)·장수재(莊修齋)·흥학재(興學齋)·고사(庫舍) 등이 남아 있다. 

대청마루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쉽게 가시지가 않는 하루였다. 무성서원이 위치한 곳은 앞으로는 천이 흐르고 뒤로는 성황산을 등진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서원 두 곳(무성서원, 용계서원)과 사당 5곳(남천사, 송산사, 필양사, 시산사, 도봉사)이 있는데,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의 강탈에 맞서 저항한 항일의병운동이 이곳 서원을 중심으로 처음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 중수한 것이며, 명륜당은 1825년(순조 25)에 불탄 것을 1828년에 중건하였다. 특히 이곳 무성서원에는 중요한 서원 연구자료가 남아 있다. 

무성서원은 최치원이 태산군(정읍 지역의 옛 지명)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백성들이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제를 올렸던 생사당(生祠堂)으로 태산사가 뿌리다.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최치원의 그 따뜻한 마음이 머물러 있었던 곳에서 잠시 머물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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