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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4. 2020

대동세상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물

금평저수지가 자리한 곳은 김제의 금산리와 청도리로 이 일대에 조성된 저수지는 능제와 함께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한다. 1961년에 축조되었으며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곳이 금평저수지가라고 한다. 저수지로 들어오는 입구의 길은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어 특별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산책과 드라이브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순례길로도 알려진 금평저수지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바로 대동세상을 꿈꾸었던 정여립이 이 일대를 기반으로 활동을 했었다. 

금평저수지의 제당 체적은 92,132㎥이다. 제방의 길이는 443m이고, 제방의 높이는 18.4m이다. 총저수량은 5,267,400톤이며, 유효 저수량은 5,251,900톤이다. 수변을 관찰할 수 있는 육각 정자 2동을 비롯해 사계절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수변 산책로 550m에 전통 소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앞서 말했던 정여립은  전주 · 금구 · 태인 등지의 무사들과 노비들을 끌어모아 대동계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그가  분명히 조정에 불평을 지닌 사람이었고 그와 어울린 인사들 또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었지만 반역을 꾀하였다는 증거는 부족하였다. 지금도 여당과 야당은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주변을 공격하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당시 동인과 서인은 그런 입장이었는데 정여립은 동인이었는데 서인이 이를 빌미로 동인의 상상수의 선비들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가 살았던 곳은 김제의 금구면으로 정여립은 옳고 그름을 잘 가렸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정여립은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보면 군주제도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 선조를 바보나 머저리로 취급했고 때로는 어두운 임금, 부덕한 임금으로 여겼다는 말도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호남 인사들의 등용을 억제했고 끝내 그곳에서 동학농민전쟁이 터지게 된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유독 물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점토 보도블록과 화강 디딤돌·경계목 울타리·오색 경관 조명 등을 설치하여 산책 코스의 편익과 운치를 한층 보강한 것과 함께 편의시설을 잘 갖추어두었다. 

금평저수지에서는 향어나 잉어가 많이 잡힌다고 하는데 이날도 얕은 물에 발을 드리우고 플라잉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을 볼 수 있었다. 향어는 잉어와 비슷하나 잉어보다 맑고 깨끗한 곳을 선호하고, 고온과 저온에 약한 것으로 보아 금평저수지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미루어짐 작해볼 수 있다. 

금평저수지의 안쪽으로 들어오면 정여립이 활동하였다는 공간이 나온다. 모악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끊임없이 금평저수지로 들어가고 있다. 금평저수지의 유역 면적은 2,571㏊이며, 홍수 면적은 59.5㏊이다. 만수 면적은 59.5㏊이고, 수혜 면적은 1,000.3㏊이다. 

금평 곁길을 찾는 방문객 증가로 주변 경관개선과 방문객 편의시설 설치를 위해 시행하는 사업이 진행 중인데 상 면적은 약 1㏊ 정도이며 연차적인 사업 추진 계획에 따른 금년 사업대상지는 동곡마을 일원으로 다양한 수목식재와 정자, 벤치 등 편의시설 설치 등을 위해 현재 기반 정리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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