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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9. 2020

가르침의 미학

본분을 지키고 형편대로 산다. 

자기 본분을 지키면 편안하고, 지위가 높든 낮든 귀하든 천하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이 닿는 대로 즐겁게 산다면 참된 인격을 가진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필자는 가족과 있을 때 자신이 사는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른 아파트의 가격이나 삶의 수준을 언급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냥 이 시간이 좋으면 그것만으로 족할 뿐이다. 옛사람들은 고난 속에서도 '한서'로 이불을 만들고 '논어'로 병풍을 삼는 변통을 자랑했다고 한다.

김장생이 말년에 낙향(1626년·인조 4년)해 강경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가 죽림서원(황산 서원)이며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임리정(황산정)은 기호학파의 중심에 자리한 건물이다. 현재 죽림서원은 문화재 보수공사 중이었다. 논산 강경의 죽림서원, 임이정과 팔괘정은 모두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는데 이날은 문화 재보 수중이어서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황산사(黃山祠)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김장생이라는 스승에게서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이라는 제자로 이어졌고 송시열이라는 스승에게서 윤증이라는 제자로 이어졌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상생이 될 수도 있고 대립이 될 수도 있다. 앞선 관계는 상생이었지만 후자의 경우는 대립의 관계로 변했다. 

옛사람의 글을 진부하게 답습하지 않아야 살아 있는 글이라고 한다. 오직 글 쓰는 사람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심이 담겨야 사랑 있으며 참된 의미를 담고 있다. 시대에 따라서 옛 생각도 다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흐르고 변하기 때문이다. 윤휴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사서의 경전을 주희와는 다르게 해석을 내렸는데 주희의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송시열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공사 중인 죽림서원은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다시 위쪽 자리한 사계 김장생의 임리정을 보기 위해 올라가 본다.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시경에서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은 것같이 하라라는 의미가 임리에 담겨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연산면 임리(林里, 숲말)에 창건하면서 서원 서북쪽에 있던 돈암이란 큰 바위의 이름을 일컬어 서원의 이름을 돈암이라 한 돈암서원의 시작과는 다르다. 실제 그쪽 지역에는 문사 최청강(崔淸江)이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連山面 ) 임리(林里)에 “아한정사(雅閑精舍)”라는 사학교육기관을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임리정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왼편으로 보면 2칸이 대청이고 오른편에는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어져 있다. 정말 더운 날이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니 찜질방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사람을 해치는 독사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연하게 독사를 만났다면 생사의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외면하고 갈 길을 가면 된다. 사계 김장생의 가르침은 현명한 배움의 길이 있었다고 한다. 일을 처리할 때는 통용을 귀중하게 여기며 독서할 때는 활용을 귀중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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