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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1. 2020

삶의 공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해미읍성

축제 등의 행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 읍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읍성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삶과 문화의 공간으로 전투를 목적으로 쌓은 산성에는 평소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최소한의 군사만 머물고 있었지만, 행정과 생활을 위해 쌓은 읍성에는 관아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모여 살았었다. 국내에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는 읍성은 이곳 해미읍성과 정의읍성, 낙안읍성, 무장읍성, 경주읍성, 홍주읍성등이 있다. 

한국의 성의 구조는 일본과는 다르다. 일본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무라이라는 직업군인이 오래도록 자리했기 때문에 성의 구조가 격벽으로 나뉘어 있다. 소수의 사무라이들이 방어하는 구획이 여러 개로 나뉘는데 그래서 왜성을 보면 우리의 성과는 한 번에 광활하지 않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조선군은 기본적으로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방어를 하는 구조이기에 집단으로 대항하기에 이런 읍성이 만들어진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등 기본적인 관아 외에 가옥, 향교, 향청, 창고, 성황사, 옥 등의 건물이 들어서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해미읍성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곳으로 유명하며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들어가는 것도 코로나 19의 개인 방역을 하고 체온을 재고 들어가 볼 수 있다. 올해는 서산 해미읍성에는 서이할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서이할’은 서산 이야기 할아버지의 별칭으로, 가야산의 수호신이었으나 1421년 해미읍성 수호를 위해 재탄생했다. 나이는 599세로 내년 축성 600주년을 맞이하는 서산해미읍성과 같다고 한다. 

조선시대 도시의 역할을 했던 읍성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허물어졌다. 대표적인 곳으로 청주성이 있다. 안과 밖의 세상이 달랐던 그때 읍성 안 사람들과 읍성 밖의 사람들은 조금 다른 느낌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가옥이 거의 없지만 해미읍성이 둘러싸고 있는 면적을 고려해보면 지역거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지방의 수령들에게는 근무기간 중에 지켜야 할 근무지침으로 성을 보수하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자연에서는 절대 세우지 말고 항상 심으라는 말이 있다. 심을 경우에는 자연이 당신이 심어놓은 모든 것을 자라게 하고 당신을 도울 것이지만 세우면 자연이 당신이 만든 것을 파괴하며 방해할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만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이읍성은 충청병마절도사의 기상이 있는 곳으로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읍성 철거령이 내려져 대부분의 읍성들이 헐려 선조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읍성을 잘 보존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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