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02. 2020

여자의 꿈

서산 정순왕후 생가을 찾다. 

본격적인 천주교의 박해와 더불어 남인이 다시는 조정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된 순조의 뒤에는 정순왕후가 있었다. 서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야심이 있었던 사람으로 사도세자를 아끼던 정성왕후 달성 서 씨가 1757년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숙종의 유지(후궁이었던 장희빈이 정실 왕비가 되어 한차례 파란이 일었던 것을 경계함)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2년 뒤 김한구의 딸을 새 왕비로 간택하였다. 그녀가 정순왕후 김 씨다. 15살의 나이에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을 간 것이다. 

그녀의 수렴청정을 통해 선왕(先王)께서는 매번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듣건대, 이른바 사학이 옛날과 다름이 없어서 서울에서부터 기호(畿湖)에 이르기까지 날로 더욱 치성(熾盛)해지고 있다고 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배척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정순왕후 생가에는 참 탐나는 화분들이 마당에 즐비하다. 이 많은 화분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일본은 그렇지 않지만 조선왕실은 상당히 근친혼에 대해 엄격했다.  조선은 본관과 관계없는 이 씨, 왕대비전과 동성인 자는 7촌 이내, 이성은 6촌 이내, 대왕대비전과 동성인 자는 5촌 이내 및 병이 있다던가 부모가 병중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제외했으며 이 씨 왕가의 후손을 위해 많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다. 

물론 조선의 유력 가문 중에 왕실의 외척이 되는 것을 그냥 반기지만은 않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택 안에는 다양한 크기와 수목의 화분이 놓여 있다. 마당에 화분만 있고 흙이 없으니 관리는 비교적 용이할 듯하다. 

조선시대의 간택은 처녀의 단자를 받은 다음에 택일을 하여 이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아버지의 성명을 쓰게 하는 초간택에서부터 최종 세 명의 후보로 좁혀지기까지 세 번의 절차를 거치고 마지막 삼간택은 왕과 왕비 앞에서 치러지며 삼간택에까지 가면 정승들과 논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나오는데 찾아간 날은 김장은 아니었지만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그녀의 수렴청정 1년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을 삼사로부터 가족이 사교(천주교)에 물들도록 단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강화도에서 사사시키는데 은언군의 서자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이었던 이변이 순조-헌종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강화도령 철종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다. 

역대로 좋은 가문이라 함은 장맛도 좋아야 하지만 음식 맛도 좋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순왕후 김 씨가 정실 왕비로 들어오고 나서 김 씨의 집안인 경주 김 씨 가문과 사도세자의 장인인 풍산 홍 씨 가문은 힘을 합쳐 영조와 정치성향이 다른 사도 세조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역사는 지나갔고 이곳에서 태어났던 정순왕후 김 씨는 정조보다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조선은 정순왕후 김 씨를 기점으로 당파 중심에서 외척 가문 중심의 정치로 넘어가 100여 년이 동안 세도정치를 하게 되었다. 정순왕후 김 씨의 유해는 경기도 동구릉의 원릉에 영조와 합장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과 예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