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06. 2020

가을꽃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지리산 노고단에 원추리가 지고 나면 옥잠화가 하얗게 피는데 그러면 가을이 온 것이다. 노고단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가을에서야 누릴 침묵을 거네는 가을꽃이 핀다. 주역에서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곧을 수 있으니 때가 되어 이를 핀다'라고 했다. 사람은 거듭된 시련을 올곧이 버텨내고 품성을 길러 속이 가득 차야 나오는 말이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한다. 

조용한 날 가을을 찾아서 논산의 송불암을 찾았다. 송불암은 조용한 가운데 불경 소리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는 항상 푸르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벌써 가을 초입에 들어섰다. 

송불암 미륵불은 묵묵히 이곳을 찾아와서 소원이나 건강을 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미륵불의 세계에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독송하거나, 옷과 음식을 남에게 보시하거나, 지혜와 계행(戒行)을 닦아 공덕을 쌓거나, 부처님에게 향화(香華)를 공양해야 한다.

경내는 조용한 가운데 독경소리만 들린다. 사람살이에 양과 음이 고루 함께 해야 하는데 음이 지나치면 우울증이 번지고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봄, 여름에 피었던 꽃은 가을에 열매로 맺는다. 그렇지만 가을에 핀 꽃은 내년에 열매로 여물고 그 옆에는 또 다른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꽃과 열매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실화상봉수라고 한다. 

여름도 완전히 간 것이 아니기에 경내에는 연꽃도 피어 있다. 이제 피는 연꽃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연꽃 습지에는 ‘수련’이 만개해 잠시나마 코로나 19 사태를 잊게 해주고 있는데 연꽃처럼 코로나 19가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자기다움을 잃지 말아야겠다. 무더위를 식혀 주는 연잎차 한 잔이 나오기까지, 숱한 손길을 거쳐야 한다.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고 날도 좋고 움직이기 좋은 때지만 여전히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을꽃을 감상해야 한다. 

송불암에는 200년을 훌쩍 넘는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배롱나무가 간지럼나무라고 알려주자 아이가 자신도 간지럽혀보겠다고 나무의 표면을 만져보더니 이렇게 부드러운 나무는 처음 봤다고 하면서 신기해한다. 

시집 오기 전의 중국 이름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던 배롱나무는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붉은 기가 들어간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여름은 가기 싫어하고 가을은 오고 싶어 하는 때가 딱 이맘때인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성인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