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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5. 2020

홍성인물

2020년 청산리대첩 100주년

황금연휴가 시작되지만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 10월은 청산리전투가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때이다.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로 일제와의 전투에서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다.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이며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 측은 전사자 100여 명을 내었다.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김좌진의 고장이며 김좌진 생가가 남아 잇는 홍성군을 방문해보았다. 만주의 흰 호랑이 백야 김좌진, 우리의 독립운동에서 김좌진은 대표적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1998년부터 홍성천 일대에 벚나무 특화거리를 조성하여 천변을 산책하는 주민들에게 봄기운 가득한 벚꽃터널 조성을 통해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는 홍성천변길이다.

홍주읍성은 홍성을 방어하는 곳이며 지금도 많은 행사를 이곳에서 하고 있다. 홍주읍성의 바로 옆에는 홍성군청이 있는데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 홍성군청이다.

평화의 소녀상이 언제 홍주읍성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몰라도 교차로가 있는 곳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해가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카자흐스탄에 묻혀있는 장군의 유해봉환을 정부가 추진 중에 있다. 중국의 봉오동 전투 현장과 청산리 대첩의 현장을 안내하고 갑오의병운동부터 게릴라전까지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의병장 홍범도 장군의 생과 함께 김좌진 장군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시간이다.

홍성을 상징하는 인물 중 두 명이 홍주읍성 뒤편에 있다. 한 명은 성삼문이고 다른 한 명은 최영이다. 향후 인류의 삶이 문명의 근간부터 달라질 것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의 인류를 '코로나 사피엔스'라고 정의하지만 성삼문이 살았던 시기도 극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성벽길을 걸으면서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던 성삼문과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했던 최영 장군, 일제에 전투를 벌였지만 암살을 당했던 김좌진 장군을 생각하면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이 홍성의 대표인물이라는 사실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삼문은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아버지 승을 비롯하여 동생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과 아들 맹첨(孟瞻)·맹년(孟年)·맹종(孟終) 등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살해되어 혈손이 끊기고 아내와 딸은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가산은 몰수되었다.

한국 조폐공사에서 올해 ‘청산리대첩 승전 100주년 기념 메달’을 선보였다고 하는데 시기를 놓쳐서 신청하지는 못했다. 금메달 1온스(순도 99.9%, 직경 40mm)와 금메달 1/2온스(99.9%, ,28mm) 각 300개, 은메달 1온스(99.9%, 40mm) 2,000개를 한정 제작했다는데 한반도와 태극의 사괘를 배치, 의연하게 고난의 길을 택했던 항일 의병의 정신이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가 됐음을 보여주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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