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성불 (成佛)

하동군 화개면의 칠불사

종교가 세속과 연관이 되는 것은 시대를 아울러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종교가 결합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없어지고 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깨달음을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종교나 분야에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깨달음이 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도는 석가모니가 6년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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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끝자락에 자리한 곳에는 금관가야의 첫 황후인 허황후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왕자들이 어떤 일로 이곳 하동까지 왔을까. 가락국 수로왕은 허황후와 사이에서 10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한 사람은 태자가 되고 두 사람은 허황후의 성씨를 이었다. 나머지 7명이 이곳에 와서 정진한 지 6년 만에 각각 성불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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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칠불사에는 대웅전, 문수전, 운상원(雲上院), 설선당(說禪堂), 보설루(普說樓), 원음각(圓音閣), 선다원 등의 전각과 칠불사사적비, 초의선사다신탑비, 문수동자탑, 부도탑 등의 탑비 및 일주문, 영지, 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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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여수·순천 사건으로 완전 소실되어 오랫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 1978년 이후 문수전(文殊殿)·보광전(普光殿) 등이 중창되었다. 거문고 명인 옥보고가 이 곳에서 거문고를 연구했다는 전설도 있는데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전설이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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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은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더욱더 가치가 있다.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많은 부처를 인정하고 있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서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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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스님들이 공부하기에 딱 좋은 환경 속에 있다. 적당하게 숨겨져 있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탁 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야국의 불교 발상지이기도 한 칠불사는 가야의 불교를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에 언제 불교가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가야의 불교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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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어디를 가더라도 두꺼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칠불사의 석조에도 두꺼비가 모서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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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연지에 머무르면서 허황후와 일곱 왕자가 살았을 때는 생각해본다. 허황후(33~189)는 신비의 여성으로 무려 156세를 살았다. 아무튼 허황후의 피를 이은 일곱 왕자는 이곳 하동까지 와서 성불한 것을 보면 득도하기에는 좋은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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