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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9. 2020

뜻에 의해서

물 흐르듯 살아간 윤증의 공간

미래가 전개되는 방식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뜻에 의해서 라고 한다. 현재 상황이 갖는 뜻을 유추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인데 뜻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미래를 아는 것이다. 후배가 필자에게 읽은 책을 또 읽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 번만 읽은 책도 있지만 몇 번이고 읽은 책도 많다고 말해주었다. 책을 한 권쓰는 것은 상당히 많은 작업을 수반한다. 에세이처럼 흘러가듯이 읽을 수도 있지만 고전은 10번을 넘게 읽어도 그때마다 다른 의미가 흘러나온다. 

배롱나무꽃이 지기 전에 논산의 윤증을 모신 유봉 영당을 찾아가 보았다. 유봉 영당제는 음력 9월 15일 오전 10시경에 시작하여 제사는 올리지 않고 20분가량 분향을 올리는데 올해는 10월 31일에 추모제를 올리게 된다. 경중재(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재실은 없음), 송당재(頌堂齋)는 여름에 기거하던 곳이다. 영당은 경승재의 북동쪽에 자리하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정은 중앙의 어각에 봉안하고 있다. 

미래란 어찌 보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실망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측은 자유지만 미래가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윤증은 우암 송시열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특이점을 지나면서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당초 윤증이 강학했던 강당은 1940년경에 헐리고 주초석만 남아 있으며, 현재는 영당과 경승재, 관리사, 그리고 아래채 등이 남아 있다. 문 입구의 배롱나무에 꽃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특히 예론(禮論)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났지만 호조참의·대사헌·우참찬·좌찬성·우의정·판 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한여름에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한옥에서 시원한 미숫가루 한 그릇만큼 족한 것이 있을까. 인생은 언제나 못해본 그 어떤 것이 있다. 우리의 영원한 꿈이 남아 있는 것을 천지부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에 선택한 길을 지천태라고 한다. 천지부(무한한 가능성)의 궤상속에 지천태(선택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윤증은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를 연구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지다 보면 그 뜻이 밝아질 때가 있다. 우의정 직첩을 받고도 입궐하지 않을 만큼 대궐 출입을 일절 하지 않아 임금도 윤증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정승의 직첩을 받기까지 한 번도 관복을 입어본 적이 없어 ‘백의정승’으로 불렸는데 그가 관직을 사양하고 조정에 출입을 하지 않았지만 정승의 녹봉이 다달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대궐에 들어가 업무를 이행한 일이 없다”면서 지급되는 녹봉을 고스란히 고을 현감에게 돌려보냈다. 지금의 고위공직자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유봉 영당의 윤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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