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허파

도심 속 작은 생태공간 쌍청당

새해가 밝아오면서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에 새싹을 틔워낼 때 코로나 19도 같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푸르고 녹색의 나무들이 나뭇잎들이 가득한 시기도 지나가고 곧 서늘한 가을바람에 일제히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부지런히 일하고 땀을 흘렸지만 추석조차도 마음 편하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녹음이 짙은 여름 숲의 상쾌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낙엽이 물든 가을 숲의 중후함이 전해지기도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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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악연과 신라로 갔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알려져 있는데 그런 그가 쌍청당 송유가 이곳에 정사를 지었을 때 그의 청으로 쌍청 당이라 편액 하였고 필연과 금기로 여생을 보냈다. 58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묘는 회덕 남쪽 판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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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촌동에 자리한 쌍청당은 마치 도심 속의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곳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송유의 할아버지는 사헌부잡단 송명의로 포은 정몽주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아버지인 송극기는 그가 4살때 일찍이 세상을 떠나며 그 흔적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조심스러웠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도심 속 정원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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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공원의 송준길은 송유의 7대손이다. 쌍청당 송유의 묘의 뒤편에는 송수록 묘와 아래쪽에는 송갑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난계 박연과 쌍청당 송유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 영동향교에서 학문을 닦았던 박연은 거문고와 비파 등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는데 음악적인 교류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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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청당 속으로 들어오면 이곳이 도심 속에 있는 집인가 간혹 잊어버릴 정도다. 쌍청당을 거닐다 보면 이곳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코로나 19와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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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청당 송유는 회덕으로 내려와 회송이라는 뿌리를 만들며 살았지만 쌍청당이라는 편액을 만들어준 박연의 말년은 계유정난 때 박연의 막내아들 박계우가 안평대군과 연관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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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송촌동이 택지개발지구로 개발이 되기 전까지 더 여유롭게 땅이 있었겠지만 지금도 담으로 둘러싸인 쌍청당은 충분히 공간의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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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때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보다는 이렇게 한적한 곳이 더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 옛사람 역시 당대에는 한 명의 지금 사람이었을 따름이다. 지금 사람으로 바로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면 될 뿐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쌍청당 송유 역시 한 명의 지금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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