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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0. 2020

여류시인

송촌에서 살았던 김호연재

여류 시인하면 조선시대에 허균의 누나였던 허난설헌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강릉에 허난설헌 생가가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문학인으로 많은 흔적을 남겼다. 대전에도 여류시인이 있었지만 많이 가려져 있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은진 송 씨의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행복하지 않은 가정생활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송촌 종합시장은 먹거리가 있는 곳으로 대덕구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공원이 있다. 이곳에 바로 김호연재의 시가 있어서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동춘당공원에 가면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법동으로 분가하면서 건립한 고택이 있었는데 후에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지금 호연재 김 씨 고택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봄의 경치 - 김호연재

밤비에 매화 피더니

아침이 되자 눈처럼 희네

꽃 아래에서 술을 마셔 취하니

맑은 향기 내 옷에 가득하구나. 


소대헌이란 큰 테두리만 보고 작은 마디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송요화가 쓰던 큰 사랑채이며, 오숙재는 깨고 자면서 공부하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김호연재는 안동 김 씨 명문가에서 자라나서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자 송요화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길을 걷다 보니 나무 모양도 제각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진 송 씨 집안에서도 적지 않은 인물이 나왔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송요화는 지나친 방탕생활로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종가에 시집왔지만 맹자의 ‘호연지기’를 자신의 호로 삼을 만큼 당찬 김호연재는 남편 대신 집안 살림은 물론 가정의 모든 일을 도맡아 챙기며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외로운 자신의 삶을 시로 남겼던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고뇌, 집을 비우는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과 처량함이 시에서 느껴진다.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술로 달래며 자연을 벗 삼아 호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생애를 사는 동안 200여 편이 넘는 한시를 남겼다. 시들을 보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단상 들을 시로 그려내면서 호연한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호연재유고에서도 주장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취하여 - 김호연재

취하고 나니 하늘과 땅이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구나.

고요히 자리 위에 누웠으니

잠시 인가사 잊음을 즐기노라.

건너편 동춘당은 수없이 가보았지만 여성이 걷고 싶다는 이 곳은 처음 와본다. 


이곳은 여성이 걷고 싶은 옛길이라고 조성해둔 곳이다. 도심 속 녹지공간을 활용하여 여성 및 아동에게 편리한 보행환경을 조성해두었으며 꽃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에도 적지 않은 여류시인이 있었다. 신사임당, 황진이, 성덕봉, 홍랑, 이옥봉, 허난설현, 매창, 김호연재, 강정일당 등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꾸며 시에 녹여냈더 김호연재는 결혼한 지 9년 만에 아들을 낳고 딸 하나를 낳았으며 42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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