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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1. 2020

유배(流配)

괴산 수옥폭포에서 스스로를 살피는 일

여전히 스스로 성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홀로 되는 것이 그렇게 불안했는지 몰라도 같이 산행을 하고 같이 취미활동을 하면서 불씨를 계속 지피고 있다. 스스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어떤 의미로는 유배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선비들에게 유배는 적지 않은 시련이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빛나는 계기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양에서 벗어나 멀리까지 보내지게 되는 것이 유배지만 대부분 풍광이 좋은 자연 속에 머무르는 것이 유배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어머니의 속에서 있을 때를 제외하고 평생을 항상 어디론가 유배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지쳐가면서 무엇인가 결핍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홀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괴산의 수옥폭포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다른 곳의 폭포와 달리 접근성이 좋아서 가끔 찾는 곳이다. 대부분의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산행을 해야 만날 수가 있다. 23년간이나 유배 세월을 했던 원교라는 사람은 속되고 비천한 글씨 쟁이를 뛰어넘으려면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연풍현감으로 근무했던 단원 김홍도는  1791년 정조의 어진을 그린 공로를 인정받아 연풍현감에 임명된 후 1795년까지 봉직했다. 그는 옥정을 그린 ‘모정풍류(茅亭風流)', 꿩 사냥을 그린 ‘호귀응렵도(豪貴鷹獵圖)’ 등은 당시 연풍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을 남겼다. 폭포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수옥정이 자리하고 있다. 녹음에 지친 나뭇잎이 흔들리며 바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수옥폭포 옆에는 올해 가을쯤에 만들어진 데크길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곳이 만들어지면 위에 올라서서 수옥폭포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첩첩산중 괴산 연풍은 한가한 동네로 궁벽하고 이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으로 발령이 나면 낙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근무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이곳이 그리워서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조령삼관문에서 소조령을 향하여 흘러내리는 계류가 20미터의 절벽을 내려 지르는 곳이 수옥폭포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류의 두 곳은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 

유배를 긍정의 관점으로 본다면 시간의 여유다. 지금은 누구나 자신에게 시간의 여유가 주어지고 있다. 일상적으로 하던 것을 꼭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성년으로서 자제해야 할 것이다. 수옥폭포가 지금은 접근성이 좋지만 교통의 오지였던 곳이기에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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