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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6. 2020

밤이 익었다.

추석이 오는 시간에 진천 마애불

절기 중에 하나인 추석은 1,000년이 넘는 시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의 명절 이기도 하다.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는 ‘벼가 익었다’는 뜻을 가진 추석의 시작은  신라(新羅)의 가배(嘉俳)에서 유래(由來)하였다고 한다. 한가위란 ‘한’은 크다는 말이고 ‘가위’는 가운데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년 추석과 다른 모습 속에 조용하게 올해의 추석은 지나갈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여전히 삶은 극단을 달리하고 있다. 

시간이 정지되었으면 생각이 드는 때지만 마음은 묵직할 수밖에 없다. 신라대부터 시작된 추석이라 그런지 몰라도 통일신라대에 만들어졌다는 진천군의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을 찾아가 보는 길이다.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은 진천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목인 초평면 용정리 부처 당고개의 초입 북쪽 암벽에 서남향으로 서 있다

도시 속의 삶과 사람이 북적거리는 일상에 익숙했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두기라는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 속에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다. 

추석을 다른 중추절(仲秋節)이란 말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陰曆) 8월 중추에 該當(해당)하므로 생긴 말이다.  추석(秋夕)은 예로부터 내려온 명절로 즐겁고 흥겨운 날이므로 신(神)에게 감사(感謝)를 드리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작년 이맘때에 올해가 이렇게 빠르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오래된 불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 마모가 되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각이 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고, 눈초리가 삐죽하게 올라가 마치 순박한 산골 아저씨 같은 인상을 볼 수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봐야 한다. 

마애불의 왼편으로는 후대에 새긴 ‘미륵불(弥勒佛)’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있으며, 반대편에는 ‘태화 4년 경술 삼월 일(太和四年庚戌三月日)’이라는 명문을 확인해볼 수 있다.  지역에서 나타나는 거칠면서 순박한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진천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위를 만져보면 석조불상이 조성된 다른 곳과 달리 재질이 무른 바위에 조성하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불신이 심하게 손상되어 세부적인 것이 많이 사라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선으로만 조각된 불상은 거친 목판화를 보는 것처럼 투박하고 깊게 음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천의 밤은 작년과 같이 추석에 앞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9월은 이제 며칠이 남아 있지 않다. 다음 주면 추석이겠지만 어떤 곳은 밤이 익어가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지나갈 듯하다.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된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에 조성되었다. 절기에 맞춰서 살아가고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교통로에 놓여 길목을 지키는 수호 신격의 기능을 하는 마애불의 사례로 대표적인 마애불은 수많은 인간사의 굴곡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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