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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6. 2020

나무와 같이!

권근 선생 유허비의 오래된 고목

아파트는 내손으로 지었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아파트를 지을 때 기여를 했을 뿐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짓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필자에게 집은 자연, 기술, 재료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채광, 노출 콘크리트, 창문, 동선 등이 고려된 집은 건축학적으로 지식이 있어야 되지만 동시에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오래된 고목이나 건조과정이 잘되어 있는 목재를 보면 기둥으로 쓰기에 참 좋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음성의 권근 선생 유허비가 있는 곳에는 25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가다가 멈추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무와 같이 그리고 나무처럼 사는 것은 변함없는 마음을 의미한다. 어머! 이런 풍광에서는 멈추어서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와 정자의 배치가 참 어울려 보였다. 

권근 선생 유허비와 함께 오래된 고목이 자리한 이곳의 용대 1리의 안터 북쪽에는 봉화산(일명 봉화 뚝)이 있어 안성시와 이천시, 음성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용대리에는 큰 쇠메기 고개, 작은 쇠메기 고개 등의 고개가 있는데 여러 작은 고개 중에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고려시대 권근 선생보다 훨씬 나중에 심어진 고목이다. 상충(朴尙衷)·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 등과 같이 명나라와 잘 지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북원(北元) 사절의 영접을 막으려고 하다가 이인임(李仁任) 등 친원파의 뜻에 거슬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던 사람이 권근이다. 

사람은 변화를 잘 예측해야 잘 살 수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의 균형적인 외교를 생각하듯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적인 외교를 생각해야 될 때다.  헌사(憲司)의 탄핵을 계기로 스스로 진정전(陳情箋)을 올려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권근의 묘소는 음성에 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변화에 삶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서 우리는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이 시대에 살아 있는 나이 든 사람보다 더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글 그리고 삶은 현명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때가 있다. 오래된 고목 옆에 자리한 정자에  앉아서 잠시 이 시간을 만끽해본다. 역시 역사는 조용하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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