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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7. 2020

효자와 열녀

음성의 작은 마을 용성리 

7개의 자연마을로 조성되어 있는 삼성면의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용성리라는 지역이 있다. 이곳의 지명은 용산(龍山)의 ‘용(龍)’자와 성산(城山)의 ‘성(城)’자를 따서 용성리라 불렸다고 한다. 안동권 씨 집성촌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에 폐사된 백운사뿐만이 아니라 용성3리 서원말 뒤에 있는 백운산(白雲山)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 충청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11호)이 있다. 

오래간만에 음성 삼성면의 용성리를 지나가다가 멈추어보았다. 운곡서원, 백운사외에도 용성1리 성미에는 진주정씨 열녀각과 조선시대의 효자 권국화(權國華) 효자문이 남아 있다. 잘 모르고 그냥 지나쳐 가볼만한 곳에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아야 한다. 

진주정씨 열녀각과 조선시대의 효자 권국화(權國華) 효자문은 용성로5번길 10에 자리하고 있다. 안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가옥과 함께 앞에는 전각의 형태로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 조금은 독특한 효자문과 열녀문이다. 

안동권씨의 시작은 안동을 찾아가 보면 삼태사라는 곳에서 접해볼 수 있다. 안동 권씨(安東 權氏) 시조인 권행(權幸)은 930년(고려 태조 13년) 고창군(高昌郡)에서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대상(大相)으로 임명되었으며 시조가 되었다. 태조 왕건이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사성하였다고 역사에서 나온다. 

효자와 열녀는 전통적인 유교관에 입각하여 생활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즐겨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게 된다. 최근 일련의 일들을 통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효자문과 열녀문을 내리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보고 배우라는 뜻도 담겨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며,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백성들 중에서도 최하이다." - 공자

효자문과 열녀문을 살펴보고 다리를 건너간다. 지천에 피어 있는 꽃들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바뀌는 경우가 드문데 그중에서 최상급의 지혜로운 사람과 최하급의 어리석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쪽에 속할지는 자신의 길이기도 하다.  

음성 용성리를 돌아다니다가 보면 느티나무 보호수가 유독 많이 보인다. 큰 나무들을 보면 다가가서 나무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본다. 요즘에는 나무를 안아보는 경험이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나무가 주는 안정감도 한몫을 할 것이다. 소인들을 잘못을 하면 반드시 꾸며댄다고 하는데 요즘 뉴스 등에서 보면 그 사례를 적지 않게 본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효자문과 열녀문의 주인공처럼 살기는 힘들어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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