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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7. 2020

황금물결

일상 속에 함께하는 거제 사등성

다른 지역에서도 읍성의 형태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읍성은 역사유적지로 관리되고 일상생활에서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거제의 사등성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일구고 가을이 되면 황금물결의 벼가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을 볼 수 있다. 거제도는 면적이 큰 곳이어서 자체적으로 식량생산이 가능했던 곳이기도 하다. 독립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 소국가를 이루면서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었다. 

거제도로 들어와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마을 속에 자리한 사등성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변진전(弁辰傳)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의 낙동강 유역 진한 12국,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변한 12국 등 변진 24개국 가운데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이라는 국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거제도에 자리했던 국가를 의미한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마을분들은 사등성이 마치 마을의 공원이나 일부처럼 생각될 듯하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벼는 일찍 익어서 추석 전 추수하는 조생종 벼인 올벼는 아니지만 추석에는 그해 첫 수확한 햅쌀로 술과 떡을 빚어 조상께 올리기 위해 올벼를 따로 심었다고 한다. 9월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벼를 수확하지 않아서 사등성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 수확철 논은 거대한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낸다. 황금색 물결의 안쪽에는 익어가는 호박을 위한 호박꽃이 피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일본이 실시한 한반도 전역의 벼 품종 조사에 따르면 그때까지 토종벼가 1451종(種)이나 존재했었다고 한다. 거제에도 토종벼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호박꽃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름답게 보인다. 옛날 쌀 품종이 1500여 개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얼마나 쌀 맛이 단조로워졌다고 하는데 거제도에서는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토종벼도 재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일부만 복원이 되어 있지만  둘레 986미터, 높이 5미터, 폭 5미터의 규모로 원래 사방에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 20년(1438년) 축 성신 도의 규정에 따라 내벽을 계단식으로 축조했던 이곳은  거제현의 관아를 고현으로 옮길 때까지 거제 읍성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이 거제의 중심지였던 때에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논이 주변으로 펼쳐져 있지만 마을이 조성되었을 때는 다른 풍광이었을 것이다.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곳은 성지로 유지되다가 다시 복원된 곳인데 아주 오래전 변한 12 소국 중 하나라는 변진 독로국으로 추정하는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지역마다 다른 쌀이 재배되었다는 것은 지금 일본의 지역마다 다른 사케처럼 다른 술맛이 지역마다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다른 쌀로 막걸리를 담갔으니, 그 맛이 얼마나 다채로웠을까. 추석 하면 먹을거리도 연상되지만 모여서 마시는 한잔의 전통주도 그 의미를 더해준다.  농촌에서는 한로가 되면 가을이 깊어져 더 추워지기 전에 추수를 힘써 마쳐야 하는 바쁜 시기다. 

밥맛이 좋은 시기에 우리는 이제 다양성을 생각해야 될 때가 되었다. 일본은 수확을 늘려 더 많은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벼 품종을 개량·통일화했을 때 우리의 토종벼도 같이 사라져 갔다. 추석이 지나면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해가는 절기인 한로가 오는데 이때 미꾸라지가 살이 찐다고 한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되지만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으며  '가을(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는 뜻으로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불렀을 것이라고 한다. 한로가 지나면 가을을 가득 품은 감홍 같은 사과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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