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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9. 2020

대나무 인생

거제도의 천주도 순례길

이제 한국도 지진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은 나라라고 한다. 지진은 생각지도 못한 위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지반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인생 역시 갑작스럽게 위기가 다가오기도 한다. 위기에서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기는 항상 앞서서 메시지를 던진다. 지진이 일어날 때 대나무밭으로 피하라는 말이 있다. 속이 텅 비어 있는 대나무 같아 보이지만 질기고 강한 뿌리가  수십 킬로씩 서로 얽혀가며, 땅속에서 튼튼한 그물망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웬만한 지진에도 안전하다고 한다.

대나무로 유명한 거제도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여행지가 적지 않다. 그중에 천주교 순례길이 이어져있는 윤봉문 요셉 성지에도 두꺼운 대나무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돌아보아도 좋은 곳으로 알려져 가고 있는 곳이다. 누군가는 대나무를 대쪽 같은 삶처럼 표현하지만 필자는 자신의 기반을 그물처럼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삶의 상징이 대나무라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살았던 순교자 윤봉문의 생애는 거제의 첫 사도로 선교를 위해 노력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심문을 하며 배교를 강요했지만 그는 끝까지 거절했으며 결국 진주 감영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게 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거쳐 올라가면 순교자의 탑이 나오고 장미꽃 길이라는 로사리오의 길로 이어진다. 진주에서 옥사한 윤봉문은 1868년 동래에서 보냈으며 이후 영도, 가덕, 웅천, 옥포 등을 거쳐 거제에 정착하지만 1888년에 통영 감영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진주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십자가의 길은 ① 예수의 사형 판결, ② 십자가를 짐, ③ 첫 번째로 넘어짐, ④ 어머니를 만남, ⑤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함, ⑥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줌, ⑦ 예수가 2번째로 넘어짐, ⑧ 예루살렘 여인들이 예수를 보고 눈물을 흘림, ⑨ 3번째로 넘어짐, ⑩ 겉옷을 벗기움, ⑪ 십자가에 못 박힘, ⑫ 십자가에서 죽음, ⑬ 십자가에서 내려짐, ⑭ 무덤에 안장됨으로 각 처에서 바치는 기도문이 정해져 있다:

십자가의 길과 연결되어 있는 거제도의  천주교 순례길은 지세포 봉수대, 지세포성, 와현 봉수대, 서이말 등대, 돌고래 전망대, 공곶 이등으로 이어지는데 시간은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4시간이 넘는 코스도 만들어져 있다. 죽림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농가소득 증대의 일익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죽세 가공품의 수출에 의한 외화획득에도 사용되는데 거제에서는 맹동죽을 활용하여 경제적인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역사속에서 중국에도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지만 한국에도 죽림칠현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도 있다. 은거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라 신문왕 때 동해에 작은 산이 하나 떠내려 왔는데, 그 산에 신기한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었는데 왕이 그 대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게 했다는 국보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대나무는 나무일까 식물일까. 대과에 속하는 상록성 목본인 대나무류의 총칭으로 상록성 식물의 총칭이다. 대나무와 관련된 설화나 활용은 대부분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빠르게 쭉쭉 뻗어 올라가는 대나무의 그 기세와 더불어 아래로는 그물같이 촘촘하게 뿌리를 이어서 땅의 변화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십자가 길은 대숲이 이룬 높은 벽의 터널과도 같았는데 깊고 어두운 숲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람이 잠시 불 때는 대나무가 그 소리를 전달해주면서 샛바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늘 푸른 대숲과 편백 숲 사이로 난 길은 종교를 떠나서 묵상하면서 걷기 좋았던 윤봉문 요셉 성지의 길을 걸으면 이탈리아 카라 지방의 대리석을 깎아 예수의 일생을 조각한 부조 14개가 울창한 대숲과 편백 숲 속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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