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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9. 2020

경순왕과 이색

하동 경천묘와 금남사

모든 왕조의 마지막은 항상 비참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비참한 걸 넘어서 그 의미조차 퇴색되며 망국의 정당함과 뒤를 이은 왕조의 신뢰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패자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되고 후대에게 기억되게 된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었으며 견훤에 의해 옹립된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다. 계백과 의자왕으로 기억되는 백제의 마지막보다 더 주목을 못 받은 것은 그가 왕건에게 의탁하며 극적인 이야기가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고려 성리학의 목은 이색과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같은 공간에 놓인 자체가 독특한 하동의 한 여행지가 있다. 녹차와 재첩, 아름다운 풍광, 도인들의 청학 동등 수많은 볼거리가 있는 하동에서 다소 소박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까지 오지는 읺을듯 하다.  

이곳에는 남해의 자리한 마을다운 분위기가 있다. 일률적인 아파트로 지어진 요즘과 달리 옛날에 지어진 집들은 그 지역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건축재료들로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지역마다 가면 지역색이 있었다. 집마다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때는 사는 곳을 만들었지만 일괄적으로 같은 평면으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자본주의 화폐 역할로 바뀌어 버렸다. 

사람이 바닥에서 올라가는 것과 위에서 떨어지는 충격을 비교한다면 사람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크지 않을까? 신라의 제56대 왕이자, 신라의 마지막 임금.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였던 사람을 모시는 곳이 경천묘다. 927년 후백제의 침공으로 경애왕(景哀王)을 견훤이 모욕을 하면서 죽인 후에 경애왕을 옹립했지만 국토는 날로 줄어들고 민심은 고려로 기울었다. 

조용해서 좋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경순왕은 군신회의(君臣會議)를 소집하여 고려에 귀부하기로 결정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고 정승(正承)에 봉해졌다. 사람들은 낙랑국과 낙랑공주를 연결하기도 하지만 낙랑국은 1세기 중엽에 있었던 고대 정권으로 32년 또는 37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나라이다. 왕건의 딸인 낙랑과 낙랑국의 낙랑(樂浪)공주는 같은 한자이지만 다른 시대를 살았다. 

금남사에 목은 이색 선생 영정(牧隱李穡先生影幀)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는 목은 이색과 양촌 권근은 원주 용화산(龍華山) 고자암(高自庵) 경천묘에서 성심으로 경순왕의 어진을 모셨으므로 이에 보답한 것이었다. 금남사는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경천묘와 금남사를 뒤로 하고 바라보니 하동의 수로를 연결하는 저곳에 용의 벽화를 그려놓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잘 보면 마치 산의 위쪽으로 승천하려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가 미래를 바꾸어가고 있는 시대지만 옛사람들의 발걸음과 현대인들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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