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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4. 2020

인생의 이룸

서기 선생 묘소와 신도비

사람은 태어나는 것에 다른 의지는 없다. 살아가는 것에는 의지가 따르지만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올 뿐이다. 인생의 이룸을 위해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 충청남도 공주에 잠을 자고 있는 서기도 한 사람이다. 토정 이지함에게 배웠으며 대항과 중용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하기 위해 이소재와 이중호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했었다.

매번 이곳을 지나가면서 한 번쯤은 서기 선생 묘소와 신도비를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기는 조선의 학자이며 자는 대가 호는 고청이며 본관은 이천이다. 조선 중종 18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행적을 간단하게 알려지는 비가 앞에 세워져 있다. 그의 행적이나 남긴 학문에 대한 수준도 남다르다고 하지만 충청도의 다른 유학자들보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묘소를 찾아서 올라가 본다. 서기 묘소는 아래서부터 얼마 안 올라가도 만나볼 수 있다. 서기의 장년기는 공부한 학문을 실천하기 위해 고향 홍주로 돌아가서 여씨향약을 시행하고자 했다고 한다.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그의 묘소를 만나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아가서 관직을 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주로 강학을 하면서 선유 선정의 정신을 모시는 사우를 세우고 서원을 세우는 등 강학의 정돈과 후진의 양성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묘소에 올라서서 보니 너무 외지고 접근성이 낮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에서 입산 수행을 하고 중악으로서 알려진 계룡산에서도 공부했던 그의 학풍은 계룡산 아래 공암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도비가 남겨져 있는 서기 선생은 1910년 융희 경술년에는 정이품 자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 시호 문목공이라 하여 충현서원에 배향되었다. 그는 인생에서 가야 할 길을 열어 경사학 방면에 침잠하여 먹기를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며 일찍이 외물로서 말년에 얻은 바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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