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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9. 2020

마음의 풍경

청아한 바람이 부는 정자에서...

하나가 이루어지면 둘이 이루어지고 셋이 따라서 만들어진다. 계절에 따라 느끼는 마음의 풍경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풍경도 보는 연습을 계속해야 어떤 풍경이 좋은지 알 수 있듯이 삶 역시 그러하다. 농부가 씨 뿌리는 날 행복한 이유는 훗날 수확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 제대로 씨를 뿌리고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우는 사람은 초연 해지는 법을 배운다. 

옥천에서 시원시원한 매운탕을 먹고 안쪽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청풍정이라는 정자를 찾아가 보았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정자 때문에 고기가 잘 낚이는 것인지 고기가 잘 낚이는 곳이어서 정자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정자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마음만은 충만해질 수 있다. 

청풍정이라는 정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읽어본다. 산수가 좋고 바람이 맑아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에 김옥균과 명월이의 이야기가 있는 정자다. 

날이 조금 흐리기는 하지만 가을의 정취는 감출 수가 없는 곳이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청나라가 조선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까지 조선의 왕가에 다시 권력을 쥐어주었지만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에게 패배하면서 청나라는 중화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살짝 비가 내린 날의 분위기 속에 바위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김옥균은 자신을 위해 명월이가 스스로가 생을 마감한 것을 보고 장사를 치른 뒤 청풍정 아래 바위 절벽에 ‘명월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사방이 트여 있는 곳이어서 청풍정은 세상의 일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곳이다. 불완전한 자신의 삶의 원칙이 다른 사람의 잘 적용된 원칙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변을 일으켰지만 삼일 만에 실패한 김옥균은 완벽한 조선을 꿈꾸었던 이 상가 이기도 했다. 

청풍정은 정자 안에 들어가서 쉬어도 좋지만 아래의 바위로 내려와서 바라보는 청풍정의 모습도 좋다. 각도가 약간 틀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곡선의 미학을 볼 수 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몰라도 풍광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림이란 자연이나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화폭 위에 색들을 배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 위의 분위기를 가득 담은 그림도 좋지만 흐린 가운데 물결을 짙은 물감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대비도 좋다. 

문득 청풍정에서 옥천에 자리한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섬과 같은 곳에서는 짙은 색을 흩뿌리고 가까이 올수록 태양빛이 살짝 비추는 듯한 색감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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