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탐구, 앎, 의지의 충현서원
추석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물의 변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바야흐로 사색의 가을이 왔는데 네 가지를 생각하는 계절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붙여 보았다. 천하의 사물에는 모두 이치가 존재한다. 오로지 이치가 미처 탐구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앎이 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 더욱더 신중하게 행동한다.
추석이 지나고 아직 연휴가 남아 있는 가운데 공주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충현서원을 찾아가 보았다. 이곳도 시골이라서 명절 때나 사람들의 모습이 좀 보였는데 올해의 추석은 조용하기만 하다. 충현서원에는 주자(朱子)를 비롯,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뿐만이 아니라 김장생(金長生)·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고 있다.
충현서원에서는 서원이 소재한 지역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서원 체험을 통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모든 프로그램이 중지가 되었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추석에는 맛있는 것이 많이 나오는 때라 풍성하게 보내지만 올해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가만히 서서 충현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외삼문을 바라본다. 이곳에서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나 이벤트 그리고 소소한 장터도 와본 기억이 난다. 말이 잘못 나가면 또한 잘못 들어오듯이, 재물도 잘못 들어오면 또한 잘못 나간다고 한다.
이비가 송우암추향비다. 추향이라고 하면 가을에 지내는 제사로 서원이나 향교에서 일반적으로 이시기에 지내는 제사지만 올해는 모두 단축되어서 지내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으니 율곡 이이가 지은 화석정시가 생각난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하니 :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이라 : 시인의 시상(詩想)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이요 : 멀리 보이는 물줄기는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이라 :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게 물들었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하고 :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내고(산위로 달이 떠오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이라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하고 :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 고?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이라 : 울고 가는 소리가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청색에 가까운 푸른색으로 칠해진 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저 문은 도로 들어가는 문으로 지혜, 인자함, 용맹이 도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주희는 설명하였다.
코로나 19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순리대로 생활하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소인은 위태롭게 행동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사회 공동체 생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서원과 같은 곳에서 종묘의 예에서는 신주를 놓을 때 왼쪽과 오른쪽에 순서대로 높는다. 작위의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변별하기 위해서이며 직분의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은 현명함의 정도를 변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충현서원에 모셔진 사람 중에 한재(寒齋) 이목(李穆, 1471~98)이 벼슬살이를 할 당시는 저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이 왕위에 있었다. 그는 상대가 비록 권신일지라도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에 평소에 원한이 있던 윤필상이 무고한 그를 끌어넣었다고 한다. 그는 “덕을 닦는 자는 일어나고 덕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논지를 펴 임금에게 경고하기도 했는데 예전에 김일손 등이 쓴 역사기록에 참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관이 있다는 무고로 서울로 잡혀 와 죽음을 당했다.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노래 한 곡조를 지어 부르고 난 뒤 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