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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4. 2020

사람의 인생

장수군의 주논개 생가지

한 사람의 인생이 또렷하게 기억되고 후손에게 남겨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소신대로 살았던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이득에 의해 불명예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장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주논개를 기리는 행사로 의암주논개정신선양회는 오는 10월 19일 장수 한누리전당 일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446주년 의암주논개 축제를 취소했다고 한다. 주논개상이 세워져 있는 곳에 주논개 생가지가 있는데 그냥 조용한 여행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안에 가면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기리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인물 중에서 주논개만큼 한 여성의 인생을 기리고 공간을 조성해둔 곳이 얼마나 될까.  원래 의기사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미인도 논개' 그림의 사본이 걸려 있었으나, 2005년 6월 10일 한 진주 지역 시민단체가 김은호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의기사에 봉안되어 있던 논개 영정 사본을 뜯어내고 지금은 다른 모습의 영정이 채택되었다. 

멀리 의암 주논개 상이 보인다. 의암 주논개의 묘소는 최경회와 정실이 안장된 묘소 아래에 안장되어 있고,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장성군에 속하지 않는 곳으로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의암주논개가 다시 재평가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는 유교사회에서 첩이 되었다는 점, 혹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점, 그의 숙부가 가산을 탕진한 점 등으로 문중에서 기피인물로 외면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산을 탕진한다는 것은 돈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그런 사람들은 참 많았다. 물론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자연의 힘이 지구를 빚어 왔다. 불과 물과 바람으로 자연은 자신의 역사를 쓰며 인류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왔다. 인류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의암주논개의 생가 쪽으로 다시 더 걸어서 올라간다.  논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남아 있는 기록을 근거로 진주성의 관기(官妓)로 알려져 왔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논개는 관기가 아니라 몰락한 양반 가문의 딸로서 최경회가 목숨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그의 후처가 되었다가 사후 정실부인으로 승격된 인물이기도 하다. 

10월이 되면 장수군은 장수사과와 장수한우 그리고 주논개를 기리는 축제도 열리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곤 했지만 올해는 제례 봉행만 거행하게 된다. 

사람은 본시 다른 운명에 처할 수 있는 존재다. 사람들은 대개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기를 종사하는 이유는 대단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면 위험부담을 감내해야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아직 선택해보지 못한 세계는 무한히 다양하며 우리의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주논개는 선택의 다양성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지다 보면 새로운 미래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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