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향기

진천 정송강사의 가을향기

사람의 진가는 그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포장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포장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득이나 이혜 관계에 얽혔을 때 본색을 드러낸다. 궁지에 몰렸을 때 혹은 코로나 19와 같이 예상치 못한 펜데믹의 시대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준비가 잘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진가는 위기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시고 떫고 못생겨 과일 망신을 혼자 시킨다는 과일이 있다. 그 과일의 이름은 모과로 시커멓게 되면서 자신의 향을 남김없이 쏟아낸 다음에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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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의 혼이 자리하고 있는 진천 정송강사에는 가을이 아름답게 내려앉았다. 이곳에 모과나무가 있었는데 떨어져 있는 모과를 하나 주어서 집으로 왔다. 잘 익어서 향이 남다른 모과이지만 겉모습은 그냥 평범하다 못해 못생겨 보인다. 모과 하나로도 방안에 향기가 가득 차고 자동차 안에 향기가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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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으로 무르익은 정송강사를 보기 위해 위로 걸어서 올라간다. 진천에 자리한 정송강 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 정철(鄭澈)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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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가지가 끝에서 끝까지 1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인다. 사람이라면 저런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걸러지며 우러나는 향기이기에 더없이 고귀하고 순수하여 바람직한 향기가 사람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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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듯이 향기는 향기답게 풍겨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좋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지만 이렇게 그 흔적을 남기니 즐겁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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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에 곱게 칠해져 있는 색과 뒤로 무르익어가는 단풍의 색이 잘 어울려 보인다. 전각에 자리한 것은 진철 정철 신도비로 조선 현종 4년 1665)에 세운 것으로 신도비의 글을 문정공 송시열이 지었으며 김수증이 전서하고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선생의 묘소는 사당의 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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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세월 속에서 상당 부분 지워져 있다. 정철의 정치적인 색은 분명했지만 적어도 후대에 남을만한 시를 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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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송강사에서 본 단풍 중에 이 나무의 색이 가장 아름다웠다. 붉은색이 진하기가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쳤던 정철의 혼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정철은 평생 정계에서 부침을 거듭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정여립의 난으로 비롯된 기축옥사를 관장함으로써 선혈로 얼룩진 당쟁의 시대를 연 인물로 규정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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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하던 정철은 권력의 비정함을 체감하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권토중래하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적이나 상대에게 가차 없이 대했었다. 정철은 청렴하고 용맹스러웠지만 지독한 음주습관 때문에 관료사회에서 내내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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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도 만취한 탓에 사모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임금이 불러도 술이 깨지 않아 등청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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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는 끼니조차 잇기 힘들게 되자 교분이 두터웠던 이희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던 정철은 청렴결백했지만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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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를 통해 정적들을 일소한 정철은 1590년(선조 23년) 2월 좌의정에 제수되었고 인성 부원군에 봉작되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화려하게 복귀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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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에게 모과 향기와 같은 향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모과가 자신의 색을 까맣게 만들어가면서 마지막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기에 하루하루에 의미를 담고 사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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