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오백 년 궁남지 견문록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고 다양한 문화의 색이 스며들어 있는 유럽이 멀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년이 되더라도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지는 않다. 원래 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역사와 풍광을 많이 만나던 터라 그 매력을 잘 알고 있다. 유럽에서도 12월 초까지 봉쇄가 시작되면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베네치아에서도 오래전에 봉쇄령이 있었다. 1500년대 초반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은 이미 베네치아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는데 통행금지 시간에 외부로 나간 유대인은 잔혹한 테러를 당하곤 했다.
특정 인종에게 통행금지가 있었던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면 궁남지가 있는 물의 고도다. 사람마다 부여를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물과 무척이나 가까운 느낌의 공간이다. 한여름에도 아름다운 궁남지이지만 온도가 내려간 이맘때가 걷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다.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어 혼란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투명한 물처럼 모든 것을 비추고 있지 않지만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만큼은 할 수 있다.
아직 모든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백제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길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양에서 아라비아반도 또는 대서양에서 유럽에 이르는 길로 부여에 자리한 구드레 나루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달 정도 있으면 만나게 되는 겨울에는 대륙에서 해양으로, 여름에는 해양에서 대륙으로 계절풍이 분다. 또한 해류도 따뜻한 물이 올라오고 찬물이 내려가면서 이동한다. 베네치아에서 가까운 지중해에서 말레이반도, 중국에 이르는 해양길(Sea Road)도 실크로드에 포함되어 있었다.
궁남지에 대부분의 연꽃은 내년을 기약했지만 아직도 곳곳에는 연꽃을 만나볼 수 있다.
각자 이룩한 문명교류의 흔적은 실크로드(바닷길, 오아시스 길, 초원길)를 따라서 이루어졌으며 동서 문명은 초원길과 오아시스 길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장기적인 발전의 자본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문화의 교류도 좋지만 우리의 역사를 먼저 알고 접하는 것이 주체적으로 생각을 정립할 수 있다. 이곳에는 사랑이야기도 있고 문명의 이야기도 있고 백제의 마지막을 품은 이야기도 있다. 견문록이란 시대 혹은 공간에 대해 일어난 사실들을 모아서 정리한 기록이기도 하다.
주역에서 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밖으로 나아가고 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우주는 빅뱅의 순간에 음이 밖으로 나오고 양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엽이 풀리듯이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계절의 맛이기도 하며 법칙이기도 한다. 문득 당시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백제 사람들을 만났을지 궁금해진다.